[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우리 시대가 배출한 가장 유명한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내년 세종솔로이스츠 무대에 선다. 직접 대본을 쓰고 내레이터 역할까지 맡아 협업한다. 문학과 음악이 만나는 공연에 팬들의 관심이 벌써 증폭되고 있다.
2024년 창단 30주년을 성대하게 축하했던 세종솔로이스츠의 비정형 음악축제 ‘힉엣눙크!’가 2025년 여덟 번째 무대로 돌아온다.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7개의 메인 프로그램과 부대 행사(찾아가는 음악회·마스터클래스 등)를 준비하고 있다.
매년 축제는 “살아있는 21세기의 클래식 음악의 현장을 보여준다”는 점에 충실했고 내년도 예외는 아니다. 라틴어라 발음이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영어 ‘Here and Now’와 뜻이 같은 ‘힉 엣 눙크!(Hic et Nunc!)’는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백 년간 내려오는 전통 클래식 곡들을 연주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현존하는 작곡가들에게 늘 신작을 위촉한다. 그래서 세종솔로이스츠의 프로그램 어딘 가에는 ‘세계 초연’ ‘아시아 초연’ 같은 설명이 자주 붙어있다.
음악 예술이 문학이나 미술 등 다른 장르와 만날 때 어떤 시너지가 나는지에도 집중한다. 다수의 음악가로 구성된 앙상블의 장점을 활용해 이합집산을 하며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시도한다.
그리고 예술이 테크놀로지라는 날개를 달 때 어떤 자유로움이 있는지를 실험한다. 음악가, 음악, 악기 등 다양한 형태의 오브제로 NFT를 발행하기도 하고 버추얼한 메타버스 공간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원하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때로는 공연장을 벗어나기도 하고, 연주회라는 형식에 갇히는 것도 거부한다.
8월 26일(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첫 공연은 ‘개미’ ‘고양이’ ‘신’ 등의 히트작으로 유명한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세종솔로이스츠와 협업한다. 국내 출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신작 ‘키메라의 시대’를 바탕으로 한 공연으로 베르베르가 직접 대본을 집필하고 내레이터 역할을 맡아 세종솔로이스츠와 무대에 선다.
텍스트와 어우러지는 클래식 작품들은 세종솔로이스츠와 베르베르가 같이 프로그래밍 하며 특별히 세종솔로이스츠를 위해 한국이 배출한 유명 작곡가 김택수가 편곡한다. 문학과 음악이 세종솔로이스츠를 매개로 만나는 이번 공연 역시 세계 초연이다.
베르베르가 주제로 사용하는 소설 ‘키메라의 시대’는 제3차 세계대전의 위험을 알리며 전쟁이 끝난 이후의 세계라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후성유전학과 유전자 돌연변이 전문가인 진화생물학자 알리스 카머러다. 전 지구적 위기에서 인류가 생존하려면 형질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카머러는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를 조합해 세 가지 새로운 존재(키메라)를 창조한다. 땅 밑, 하늘, 바다라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신인류가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에 기존 인류는 과연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에 어울리는 음악과 작가의 내레이션을 통해 청중들은 이전에 없던 클래식 콘서트를 경험하게 된다.
문학과 음악의 만남은 9월 3일(수) 무대(장소 미정)에서도 이어진다. ‘황무지’로 널리 알려진 T.S 엘리엇의 장편시 ‘네 개의 사중주’ 낭독과 베토벤 ‘현악사중주 15번 a단조(작품번호 132번)’ 연주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 국적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엘리엇은 시인 스티븐 스펜더에게 쓴 편지에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작품 132를 공부하는 것은 나를 지치지 않게 하며, 죽기 전에 그 작품을 시로 표현해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네 개의 사중주’는 현악사중주 작품 132가 5악장의 구조인 것처럼 1개의 시가 5부로 나뉘어 있고 형식적이나 구조적인 모방을 통해 베토벤의 작품을 담아내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공연에 앞서 영어영문학자인 봉준수 교수(서울대)가 두 작품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주고 문학과 음악의 접점을 찾아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팁을 제공할 예정이다.
9월 4일(목)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미국을 대표하는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과 걸출한 바이올리니스트 아델 앤서니가 세종솔로이스츠와 협연한다. 바흐의 시공간을 초월한 명작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그리고 아브너 도만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의 아시아 초연 무대다(세계 초연은 4월 카네기홀에서 예정되어 있음). 도만의 협주곡은 특별히 바흐 작품과 함께 연주되도록 구성된 작품이다.
이외에도 9월 2일(화)에는 축제의 전통으로 이어온 ‘젊은 비르투오소’ 시리즈에 첼리스트 여윤수가 출연한다. 세종솔로이스츠는 차세대 리더 양성을 단체의 주요 미션 중 하나로 삼아 젊고 재능 있는 연주자들을 지원해왔고 매년 가능성 있는 젊은 음악가 1인을 선택해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쇤 필드 국제 현악콩쿠르를 비롯해 다수의 국내외 콩쿠르를 석권한 여윤수는 2016년 독일 크론베르그 아카데미 페스티벌에서는 최연소로 프란스 헬머슨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만 15세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 입학 후 같은 해에 미국으로 건너가 커티스 음대에서 카터 브레이, 피터 와일리를 사사했다. 현재 미국 보스턴 ‘From the top’ 소속 아티스트이자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뮤직 채플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8월 27일(수)에는 한국계 기타리스트 지지 리사이틀이 열린다. 서울 태생의 지지는 2009년 파크닝 인터내셔널 기타 콩쿠르에서 영 기타리스트 2위, 2016년 콘서트 아티스트 길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현재 인디애나 음대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외에도 영유아와 그들의 양육자를 위한 참신한 기획으로 사랑받은 ‘베이비 콘서트(일정 미정)’가 전통을 이어나가며 영유아보다 한 단계 연령층을 높여 ‘스쿨 클래식(일정 미정)’이 사회공헌과 커뮤니티 연계 프로그램의 차원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아울러 테크놀로지와 클래식 음악의 만남의 현장을 매년 생생하게 다른 모습으로 전해온 ‘NFT 살롱(일정 미정)’도 축제 기간에 열린다.
세종솔로이스츠는 1994년 창단 이래 30년간 전 세계 120개 이상의 도시에서 700회 이상의 무대에 오른 글로벌 앙상블이다. 한국 클래식 음악 앙상블의 시초가 된 세종솔로이스츠는 줄리아드 스쿨과 예일 대학에서 지도자로 명성을 쌓은 강효 교수가 탄생시키고, 총감독 강경원이 온화한 리더십으로 이끌어오고 있는 단체다.
이 두 사람은 문화적 역량이 서울에 집중되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비서울권 음악 축제를 탄생시키고 일군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평창대관령음악제’를 2004년 탄생시키고 2010년까지 이끌면서, 문화 선진국들의 음악 축제 모델을 완벽하게 한국에 안착 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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