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얍 판 츠베덴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이 지난 1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하고 있는 가운데 소프라노 하나-엘리자베트 뮐러(왼쪽)와 메조소프라노 태머라 멈퍼드가 노래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클래식비즈 함혜리 객원기자]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 2년 차에 접어든 얍 판 츠베덴이 2025년 첫 정기연주회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c단조 ‘부활’을 연주했다. 지난 1월 16일과 17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판 츠베덴과 서울시향은 지난해 1월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에서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연주하고 녹음해 국내 교향악단 최초로 클래식 전용 앱 ‘애플 뮤직 클래시컬’을 통해 음원을 공개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올해는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에 이어 교향곡 7번(2월 20일·21일)을 선보인다. 판 츠베덴은 임기 5년 동안 ‘말러 사이클’(말러 교향곡 9곡을 모두 연주하는 것)을 이어간다.
올해 재단법인 설립 20주년과 창단 80주년을 맞는 만큼 말러 2번 ‘부활’은 이래저래 중요한 연주회였다. 클래식 팬들은 올해 꼭 가야 할 연주회 목록 중 말러의 ‘부활’에 체크 표시를 해놓고 이 연주회를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KBS 교향악단은 2월 21일 정명훈 지휘로 말러 2번 ‘부활’을 연주할 예정이다. 이틀간의 연주는 전석 매진됐고 둘째 날인 17일에도 객석은 열기로 가득 찼다.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지난 연말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할 때 폭주 기관차 같았던 판 츠베덴은 무대에 올라 웨인 린 부악장과 악수를 나눈 뒤 호흡을 가다듬고 바로 지휘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정교하고 깔끔하게 엄청난 사운드를 주조해 내며 클라이맥스로 이끌어갔다.
2번 ‘부활’은 말러가 28세 되던 해 착수해 6년에 걸쳐 공들여 작곡한 곡이다. 1번 ‘거인’이 작곡가 개인의 관점을 투영했다면 2번 ‘부활’은 인간의 근원적인 고민인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성찰, 인간의 감정과 고뇌를 담았다. 삶과 죽음, 구원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죽음의 어둠에서 부활의 찬란한 빛으로 향하는 장대한 여정을 통해 삶의 의미와 중요성을 일깨워 주며, 궁극적으로는 희망을 담고 있다.
‘부활’은 총 5악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독립적인 음악적 정체성을 지닌 각각의 악장이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불멸의 열망과 희망을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5악장은 프리드리히 클롭슈토크의 시 ‘부활’에서 영감을 받아 말러가 작사한 가사를 담고 있으며 오케스트라와 성악, 대규모 합창이 결합해 극적인 정점에 도달한다.
얍 판 츠베덴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이 지난 1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얍 판 츠베덴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이 지난 1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부활’은 죽음에서 영원한 삶으로 가는 것이다. 1번 ‘거인’의 정신적 계승작인 ‘부활’은 거인의 죽음에서 시작해 삶에 대한 예찬으로 끝난다. 오케스트라 편성은 현악 5부에 플루트, 피콜로,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콘트라바순, 호른, 잉글리시호른, 트럼펫, 트롬본, 튜바, 팀파니, 오르간, 베이스드럼, 심벌즈, 트라이앵글, 스네어드럼, 글로켄슈필, 탐탐, 벨, 류트가 등장한다.
말러 특유의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효과를 내기 위해 호른 4대, 트럼펫 4대, 타악기 일부(팀파니, 트라이앵글, 베이스드럼, 심벌즈)가 무대 밖(오프 스테이지)에서 연주한다. 말러는 이처럼 다채로운 악기구성으로 금관과 타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감동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이번 공연에서는 훌륭한 객원연주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1악장의 도입은 장송의식이다. 죽음의 순간을 맞은 후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묘사한다. 비통한 가운데 죽음을 거부하는 몸부림을 표현하듯 현악 파트가 세차게 현을 긋는다. 비장함은 맹수가 심장을 할퀴는 것 같고 팀파니 2대가 두드려대니 등과 머리를 마구 때리는 것 같다. 잉글리시 호른이 구슬픈 멜로디를 풀어내며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과거의 회상, 한 줄기 햇살’이라고 언급한 2악장에서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절을 떠올리듯 오스트리아 전통 무곡인 렌틀러 리듬이 퍼진다. 3, 4, 5악장은 쉼 없이 이어진다. 16일 연주에서는 2악장이 끝나고 3악장 들어가기 전에 솔리스트가 나오지 않아 잠시 머뭇하다가 결국 웨인 린 부악장이 들어가 두 명의 솔리스트가 무대에 나오는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17일에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고 순조롭게 연주를 마쳤다.
3악장은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성안토니우스’를 재작업한 교향적 스케르초로 일상의 다채로움과 함께 삶의 절정에 이른듯한 분위기를 표현한다. 꿈속을 거니는 듯 온화하고, 생동감이 넘치다가 뭔가 복잡해진다.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어딘가 불안하더니 갑자기 죽음의 그림자가 덮친다. 인생이 그렇듯이. 3악장은 ‘부활’ 가운데 가장 시니컬하고 모던한 곡이다.
독창으로 4악장이 시작된다. 메조소프라노 태머라 멈퍼드의 솔로 ‘근원의 빛(Urlicht)’은 갑자기 죽음이 닥쳤지만 그것은 고통, 고난도 아니고 다만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위로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구원에 이르는 길은 험하고 좁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 곡은 말러가 가곡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 수록한 ‘근원의 빛’을 통째로 가져왔다.
얍 판 츠베덴이 지난 1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한 뒤 소프라노 하나-엘리자베트 뮐러와 메조소프라노 태머라 멈퍼드와 함께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얍 판 츠베덴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이 지난 1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마지막 5악장은 천둥 치는 것처럼 강렬한 타악기의 굉음으로 시작한다. 무대 밖의 호른, 트럼펫, 타악기들이 쿵쾅거리며 죽음의 세계를 보여주고, 플루트와 피콜로는 마지막으로 미련의 끈처럼 삶의 달콤함을 노래한다. 갈등하는 인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인간 앞에서 소프라노 하나-엘레자베트 뮐러가 “죽음은 끝이 아니다”라며 부활의 믿음을 가지라고 노래한다. 메조소프라노와 합창이 가세해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노래한다. “짧은 안식 후에 불멸의 삶, 너를 주신 분이 주시리! 너 씨 뿌려져 다시 피어나리니...”
‘부활’은 베토벤의 영향으로 교향곡에 성악을 도입했다. 한스 폰 뷜러의 추모식에서 공연된 클롭슈토크의 종교시 ‘부활’이 합창으로 불리는 순간 피날레의 영감을 떠올렸다고 한다. 베토벤은 ‘합창’에서 인류의 환희와 평화를 외쳤다면, 말러는 ‘부활’의 합창에서 “인간이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웅장하고도 가슴 뭉클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30분이 넘게 소요되는 5악장에서는 말러 음악의 장대함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다양한 효과음을 위해 연주자들이 들락날락하고 2명이나 있는 팀파니에 한 명이 더 가세하고, 하프 두 대가 조용히 연주하다가 탐탐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두 솔리스트의 위치도 특이했다. 무대 전면 지휘자 옆이 아니라 목관 주자들 뒤에 자리 잡았다. 성남·고양·파주시립합창단이 연합으로 등장한 합창단은 처음엔 앉아서 고요하게 읊조리는 듯하다가 클라이맥스에서 기립해 “티끌 같은 내 육신아, 짧은 안식 후에 부활하리라”를 노래한다. 트럼펫, 호른, 타악 주자들의 오프 스테이지도 눈에 띄었다. 호른 4명은 5악장 중간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고, 타악기 주자 1명도 나갔다가 들어오고, 트럼펫 주자 4명은 무대 밖에서 연주하다가 들어와 호른 주자들 뒤에 앉아 연주했다.
소프라노 독창과 혼성 합창단, 트럼펫 5·6 주자, 오프스테이지에 배치된 브라스와 타악기, 파이프오르간, 교회 종이 피날레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끌어올려 천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경이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장엄하고도 아름답게. 그렇게 인간은 영원한 삶을 얻는다. 독창과 합창. 관·현·타악기가 한 치의 오차 없는 연주로 홀을 뒤흔들며 웅장하게 마무리했다. 홀 전체가 들썩일 정도의 엄청난 피날레로 곡이 마무리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250명 정도가 쏟아낸 음악은 결국 부활했다.
“나 죽으리라. 살기 위하여! 부활하리라, 부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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