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닝 펑이 롱 유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클래식비즈 손민수 음악칼럼니스트] 지난 4월 11일 롯데콘서트홀 공연을 선택한 이유는 자주 연주되지 않는 프로그램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중국인 지휘자와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지휘자 롱 유(Long Yu)는 현재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자 베이징 차이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광저우 심포니 명예 음악감독, 그리고 홍콩 필하모닉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그는 동양과 서양 음악을 넘나드는 해석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독일과 미국, 유럽 전역의 유수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해 왔다. 중국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에 있는 그가 서울시향과 어떤 교감을 이뤄낼지 이번 무대는 그의 지휘 스타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공연의 첫 문을 연 무소륵스키의 오페라 ‘호반시치나’ 전주곡은 1872년에서 1880년 사이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작곡됐다. 러시아의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대본을 무소륵스키가 직접 작성했다. 그가 1881년 세상을 떠나면서 피아노 스코어는 거의 완성 상태였지만 오케스트레이션은 대부분 부족한 상태인 미완성 작품이다. 이 오페라는 17세기 말 러시아의 정치적 혼란과 종교 갈등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주곡은 그런 격동의 서사를 예고하기 보다는 정반대의 분위기로 시작된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편곡한 이 전주곡은 마치 안개 낀 이른 아침의 도시를 바라보는 듯 잔잔하고 서정적인 선율로 청중을 천천히 작품의 세계로 이끈다.

현악기의 부드러운 흐름 위로 관악기의 잔잔한 음형이 교차하면서 러시아 정교회의 종소리와 같은 신비로운 울림이 느껴졌다. 러시아 민속적인 색채와 함께 새벽녘의 고요한 분위기를 담아낸 이 음악은 무소륵스키 특유의 정서를 잘 보여줬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무소륵스키 사후 그가 남긴 스케치를 정리하고 보다 세련된 오케스트레이션을 입혀 오늘날 우리가 듣는 풍부한 사운드로 재탄생시켰다. 그의 손길 덕분에 무소륵스키 특유의 민속적 색채와 거칠지만 진솔한 선율이 보다 세련된 질감으로 표현되며 현대 오케스트라 편성에서도 아름답게 빛난다.

이날 연주는 비올라의 첫 선율에서 플루트로 이어지는 인트로가 다소 빠른 템포로 시작됐다. 원래 느릿하고 고요한 트란퀼로(Tranquillo)의 분위기에서 살짝 벗어난 인상을 주었다. 그 이후에는 전체적으로 차분한 흐름을 회복하며 단선율 중심의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진행으로 관객을 사색적 분위기로 이끌었다.

각 악기 간의 대화에 중점을 둔 듯한 해석은 오히려 장중함보다는 편안함을 주었고 특히 현악 파트는 대부분 작고 섬세한 음량 안에서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다만 중간 중간 긴 프레이징이 요구되는 관악기 파트에서는 약간의 불안정한 호흡이 감지되어 집중을 잠시 흩트리기도 했다.

무대 전체를 감싸는 정적인 정서는 잘 유지됐지만 작품에 깃든 러시아 정교적 신비감이나 종교적 깊이는 다소 옅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조용한 서정시처럼 내면을 관조하게 만드는 연주였다는 점은 인상 깊었다.

바이올리니스트 닝 펑이 롱 유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닝 펑이 롱 유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두 번째 곡인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은 1935년 작곡됐다. 이 협주곡 2번은 형식에서는 1번보다 전통적인 구성을 따르면서도 작곡가 특유의 직선적인 에너지와 민속적 선율 감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초연은 같은 해 12월 마드리드의 모뉴멘탈 극장에서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로베르트 소텐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프로코피예프 자신이 이 작품을 파리, 보로네시, 바쿠 등 여러 도시에서 작곡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배경은 곡 곳곳에 배어 있는 떠돌이의 감정, 그리고 시대적 불안과 이질적 공간에 대한 감각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협연자로 무대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닝 펑(Ning Feng)은 오늘날 국제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이다. 베이징 중앙음악원에서 기초를 다진 그는 이후 런던 왕립음악원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에서 각각 하워드 데이비스와 안티예 바이토하스를 사사하며 동서양 음악 교육을 두루 섭렵했다.

파가니니, 퀸 엘리자베스, 하노버 국제 콩쿠르 등 유수의 국제무대에서 입상하며 이름을 알렸고 날카로운 테크닉과 따뜻한 음색을 겸비한 연주자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연주는 대체로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면서도 내면의 서사를 정밀하게 조율해나가는 점에서 감성보다는 지성에 기반한 음악적 통찰이 두드러진다. 특히 러시아 레퍼토리에 강한 해석력을 보이는 그는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라흐마니노프 등 20세기 작곡가들의 내면적 긴장과 형식미를 정제된 언어로 풀어내는 데 탁월하다.

바이올리니스트 닝 펑이 롱 유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연주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1악장에서는 바이올린 솔로가 선율을 덤덤하고 명료하게 시작하며 닝 펑은 음악적 의미를 담아 차분하게 그려냈다. 자주 변화하는 박자와 조성 속에서도 오케스트라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고 선율을 주고받는 구간에서는 오케스트라와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었다. 재현부로 넘어가는 리타르단도(ritardando·점점 느리게)에서는 호흡이 안 맞는 라이브의 재미도 있었다.

2악장은 이 협주곡의 서정적인 정수를 보여주는 악장이다. 오케스트라와 솔로 바이올린이 12/8, 4/4 박자를 오가며 주고받는 테마가 특히 인상 깊었고 두 주체 간의 자연스러운 대화는 곡의 서정성을 한층 부각시켰다. 특히 피우 아니마토(piu animato·더욱 생기있게) 부분의 9/8, 3/4 박자 구간에서는 앞부분보다 더욱 가볍고 아름다운 연주가 돋보였다. 마지막 4마디 피치카토(pizzicato·현을 손가락으로 튕겨 연주하는 것)에서는 앙상블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났다.

3악장은 활기찬 론도 형식의 알레그로, 벤 마르카토(Allegro, ben marcato)로 스페인풍의 주제와 캐스터네츠의 리듬이 더해지며 유럽 남부의 색채가 강조된다.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다채로운 악기 배치가 돋보이는 악장으로 닝 펑은 안정된 테크닉과 절제된 표현으로 이 악장을 견고하게 이끌었다. 지휘자 롱 유와도 안정적인 호흡을 주고받으며, 전체적인 리듬의 추진력을 잃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그의 절제된 표현과 치밀한 프레이징은 작품의 구조와 감정을 정교하게 조율해내며 지휘자 롱 유와의 교감 속에서 설득력 있는 해석을 완성해냈다.

지휘자 롱 유가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지휘자 롱 유가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피날레 곡은 1940년에 완성된 ‘교향적 무곡’.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주요 작품이자 망명 시기에 전곡을 미국에서 작곡한 유일한 작품이다. 외형적으로는 세 개의 무곡으로 구성돼 있지만 그 안에는 자전적 회고, 러시아에 대한 향수, 종교적 상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작곡가의 인생과 신념을 압축한 자전적 곡이라 할 수 있다.

원래 각 악장에 ‘정오’ ‘황혼’ ‘자정’이라는 표제가 붙을 예정이었으며 이는 삶의 흐름을 상징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첫 번째 악장은 교향곡 1번의 주제를 장조로 인용함으로써 과거의 실패를 회복의 정서로 승화시키고 두 번째 악장은 유령 같은 분위기와 알토 색소폰의 독특한 음색을 통해 황혼의 고요함을 표현한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죽음을 상징하는 ‘디에스 이레이(진노의 날)’와 부활을 상징하는 ‘철야기도’의 선율이 격렬하게 충돌한다. 라흐마니노프는 직접 할렐루야(Hallelujah)라는 단어를 악보에 남겨 종교적 신념과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지휘자 롱 유가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을 연주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음악적으로는 변화무쌍한 화성과 대담한 오케스트레이션, 개별 악기 음색에 대한 예리한 감각이 어우러져 라흐마니노프 후기 양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무곡은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서 전쟁과 망명 속에서도 음악으로 존재의 의미를 되찾고자 한 작곡가의 강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 무대를 마무리하는 작품으로서 이 곡은 그 자체로 충분한 철학과 중량감을 지닌다.

1악장 ‘Non Allegro’는 말 그대로 전통적인 ‘빠름(Allegro)’이 아니라 단지 빠른 템포일 뿐이다. 멀리서 들려오듯 1바이올린이 8분 음표를 연주했고 이어 잉글리시 혼과 클라리넷이 테마가 되는 리듬을 연주했다. 바로 이어진 포르티시모 부분에서 사운드의 몰입으로 인해 8분 음표의 길이가 예상보다 길어졌고 이후 템포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벤 마르카토를 강조하려는 지나친 집중으로 트럼펫의 리듬이 느려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순간적으로 위기의 상황이 찾아왔지만 지휘자의 노련함과 단원들의 뛰어난 역량으로 빠르게 상황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 순간은 지휘자와 단원들의 역량을 명확하게 드러내며 작품의 긴장감 넘치는 흐름을 끊임없이 유지하려는 그들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후에는 특별한 문제없이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했으나 중간 중간 어색함이 엿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연주였다.

앙코르 곡들이 앞선 정규 프로그램보다 더 인상 깊게 다가온 공연이었다. 닝 펑의 첫 앙코르는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루지에로 리치의 편곡 버전이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숨을 죽여야만 했고 그 숨죽임은 곡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기타의 빠른 아르페지오를 바이올린으로 쉼 없이 표현하는 닝 펑의 연주는 그가 테크닉 적인 곡보다 음색과 표현에 중점을 두는 연주자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연주였다.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이다 보니 내심 파가니니를 기대했었는데 역시 다시 등장해 파가니니 ‘카프리스 7번’을 연주했다. 약간 빠른 템포로 시작했지만 그의 테크닉은 흠 잡을 곳이 없었다. ‘링 펑이 루지에로 리치를 좋아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주를 들으며 루지에로 리치가 생각났다. 1부 공연이 끝났을 때 이미 오늘의 모든 연주를 다 들은 듯한 포만감이 밀려왔다.

이 날의 연주는 무소륵스키의 잔잔한 전주곡으로 시작해 프로코피예프의 직선적이고 선명한 협주곡,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의 자전적이고 철학적인 교향적 무곡으로 이어지며 세 작곡가의 내면세계를 조명하는 하나의 여정처럼 느껴졌다. 특히 닝 펑의 절제된 감성과 롱 유의 명료한 지휘는 프로그램 전체에 긴장과 정서를 균형 있게 부여하며 자칫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작품들을 지성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지휘자 롱 유는 과하지 않은 제스처와 기본에 충실한 지휘자로 보였고 그가 생각하는 그림을 많이 그려내려 노력한 모습이 보였다. 아마 자주 호흡을 맞추고 긴 리허설을 한다면 더 좋은 음악적·철학적 표현을 보여줄 것 같았다.

서울시향은 빠르고 명료한 파트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서정적 긴 호흡에서는 관악 파트 부분의 다소 보완의 여지를 남겼지만 전체적으로 단단한 앙상블을 유지하며 감상에 몰입하게 했다. 잔잔한 철학이 배인 이번 공연은 화려함보다는 정제된 감정과 절제된 에너지로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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