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권은주와 베이스 윤종민이 슈만의 연가곡집 ‘미르테르의 꽃’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10월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듀오 콘서트를 연다. ⓒ클링앤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의 뜻대로 안정적 생활을 위해 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을 시작했지만 청년 슈만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음악 열정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당시 가장 유명한 ‘족집게 강사’ 프리드리히 비크를 찾아가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다. 아예 집에서 먹고 자며 공부하는 ‘상주 제자’였다.

슈만은 크게 성공하고 싶었다. 피아노를 잘 치고 싶은 욕심에 손가락을 강화하는 훈련을 무리하게 했다. 이게 화근이 됐다. 오른 손가락에 영구 장애가 생겨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경이었지만 그냥 신세 한탄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작곡과 비평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프리드리히 밑에서 배우는 동안 ‘소중한 것’을 건졌다. 스승의 딸이 눈에 들어왔다. 클라라 비크(1819~1896)였다. 한집에서 살다보니 클라라마저 슈만에게 홀딱 빠졌다. 아홉 살 연하였던 클라라는 이미 피아노 신동으로 유럽에 이름을 떨쳤다. 탄탄대로 꽃길만 걸으면 되는데 느닷없이 슈만이 끼어들었으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분통 터질 노릇이다. 피아니스트로의 커리어는 끝장났고, 더욱이 옆에서 지켜보니 ‘이상 성격’까지 드러났다. 애제자에서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프리드리히는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한번 불이 붙었는데 그렇게 쉽게 꺼지겠는가. 슈만은 결혼 승낙을 받아내지 못하자 결국 법정 소송까지 진행하는 등 장인과 벼랑 끝 싸움까지 벌였다. 1840년, 슈만은 마침내 클라라와 결혼한다. 슈만이 서른 살, 클라라가 스물한 살 때다. 아버지의 성(비크)을 떼어내고 새로 남편의 성(슈만)을 붙여 ‘클라라 슈만’이 됐다.

1840년은 슈만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최고의 해다. 아름다운 선율이 끊임없이 샘솟았고, 그 음표들은 모두 클라라에게 바치는 선물이었다. 약 140곡의 리트(독일 예술가곡)를 만들었다. 엄청난 생산능력이다. 그래서 이 해를 그의 작곡 인생에서 ‘가곡의 해’라고 부른다. 결혼을 위해 법원의 허락을 기다리며 ‘시인의 사랑’을 작곡했고, 결혼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난 후 곧바로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완성했다. ‘리더크라이스’도 이때쯤 만들었다.

결혼식 전날 밤, 슈만은 “아이 러브 유! 포에버”를 맹세하며 26개의 곡으로 구성된 연가곡집 ‘미르테의 꽃(Myrthen, Op.25)’을 클라라에게 바쳤다. 괴테, 뤼케르트, 바이런, 번즈, 하이넨, 모젠, 무어 등 여러 시인의 작품에 멜로디를 달았다. ‘미르테’는 우리말로 ‘은매화’로 번역되며, 신부가 머리에 쓰는 화관을 장식하는 꽃으로 주로 사용된다. 특히 향기가 좋다.

소프라노 권은주와 베이스 윤종민이 슈만의 연가곡집 ‘미르테르의 꽃’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10월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듀오 콘서트를 연다. ⓒ클링앤 제공


소프라노 권은주와 베이스 윤종민이 ‘미르테르의 꽃’ 속에 들어있는 26곡을 중심으로 사랑과 삶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특별한 듀오 콘서트를 준비했다. 10월 17일(금) 오후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열린다. 김미아가 피아노 반주를 맡고 조성환이 해설을 진행한다.

이번 공연은 ‘26개의 꽃이 피어나는 밤’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오늘 밤, 우리는 26송이의 노래꽃이 피어나는 곳으로 시간 여행을 떠납니다. 사랑은 수수께끼처럼 다가오고, 그 문을 여는 순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라는 메시지처럼, 리사이틀은 단순한 음악회를 넘어 한 편의 서정적인 이야기로 관객을 이끈다.

슈만의 ‘미르테의 꽃’은 ‘수수께끼(Rätsel)’로 시작해 사랑의 기쁨과 고독, 이별과 헌신을 노래하는 다양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헌정(Widmung)’ ‘호두나무(Der Nussbaum)’ ‘그대는 꽃과 같이(Du bist wie eine Blume)’ 등 잘 알려진 가곡들이 포함돼 있으며, 두 성악가는 듀엣과 독창을 오가며 풍성한 감동을 선사한다. 1부에서는 사랑의 시작과 신비를, 2부에서는 이별과 그리움, 그리고 헌신의 노래로 마무리된다.

소프라노 권은주는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 석사 및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친 뒤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노이에슈팀멘(Neue Stimmen) 국제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 1위를 비롯해 국내외 유수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독일 만하임 국립극장 전속 솔리스트로 활동했으며, 귀국 후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오페라단 등에서 주역을 맡아 활발한 무대를 이어오고 있다. 오페라 ‘라 보엠’ ‘사랑의 묘약’ ‘투란도트’ 등의 주역으로 활약했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성악과 겸임교수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베이스 윤종민은 한양대학교 성악과와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에서 석사 및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전국학생음악콩쿠르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비엔나 클라시크마니아(Klassik Mania) 국제성악콩쿠르 입상 등 두터운 실력을 쌓아왔다. 독일 레겐스부르크 시립극장 전속 솔리스트를 거쳐 뮌헨, 하이델베르크 등 주요 극장에서 베이스 주역으로 활동했다.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해왔다. 현재 한양대학교 성악과 외래교수로 활동 중이다.

‘미르테의 꽃’은 슈만의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작품으로, 인생의 설렘과 사랑의 깊이를 담고 있다. 이번 무대는 한국 성악계를 대표하는 권은주와 윤종민 두 성악가의 만남을 통해, 슈만이 남긴 사랑의 선율을 현대 무대 위에서 다시 피워 올리는 소중한 시간이다.

영상과 해설이 함께하며 관객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시킬 이번 공연은 단순한 음악회가 아닌, 음악으로 피어나는 ‘사랑의 꽃다발’을 관객에게 건네는 여정으로 기억될 것이다.

공연은 R석 5만원, S석 3만원(학생할인 50%)로 예술의전당과 NOL티켓에서 예매가능하다.

/eunki@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