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박혜상이 마포문화재단이 마련한 제10회 M 클래식 축제 ‘노래의 날개 위에’ 시리즈 두 번째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소프라노 박혜상이 라틴 문화 특유의 강렬함과 동양적 여백의 미가 공존하는 스페인 가곡으로 존재감을 뽐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엔리크 그라나도스, 안톤 가르시아 아브릴, 에르네스토 할프테르, 페르난도 오브라도스, 헤수스 구리디 등 스페인 작곡가들의 곡을 대방출했다. 정열과 고독, 그리고 일상적인 인간적 감정을 담고 있어 기존 가곡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박혜상은 지난 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마포문화재단이 마련한 제10회 M 클래식 축제의 ‘노래의 날개 위에’ 시리즈 두 번째 무대다. 스페인 예술가곡을 메인에 놓고, 오페라 아리아와 독일 가곡까지 아우르는 풍성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1부 첫 곡으로 조아키노 로시니의 마지막 오페라 ‘윌리엄 텔’(프랑스어 제목 ‘기욤 텔’, 독일어 제목 ‘빌헬름 텔’, 이탈리아어 제목 ‘굴리엘모 텔’)에 나오는 ‘어두운 숲(Sombre Foret)’을 불렀다.
박혜상은 이어 ‘봄’ ‘9월’ ‘잠자리에 들며’ ‘저녁 노을 속에서’로 연결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e Liede)’를 통해 음악적 형식미보다 인간의 깊은 내면과 분출하는 감정의 절제를 담아냈다. 심오한 아름다움이다.
소프라노 박혜상이 마포문화재단이 마련한 제10회 M 클래식 축제 ‘노래의 날개 위에’ 시리즈 두 번째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소프라노 박혜상이 마포문화재단이 마련한 제10회 M 클래식 축제 ‘노래의 날개 위에’ 시리즈 두 번째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소프라노 박혜상이 마포문화재단이 마련한 제10회 M 클래식 축제 ‘노래의 날개 위에’ 시리즈 두 번째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2부는 스페인 가곡의 시간. 박혜상이 특히 공을 많이 들인 파트다. 그는 콘서트를 앞두고 “이번 공연을 통해 ‘사람의 감정이 흘러가는 여정’을 그리겠다”며 “사랑, 상실, 그리고 다시 삶을 받아들이는 순환의 이야기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스페인 음악의 매력을 설명했다. 그는 “스페인 가곡은 내면의 정서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장르로 그 안의 서정성과 색채가 무척 감각적이다”라며 “이 곡들을 통해 낯설지만 따뜻한 감정의 세계를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의도에 딱 맞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곡을 골랐다.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 모음곡(Goyesca Suite)’ 중 제4번 ‘비탄 또는 처녀, 그리고 나이팅게일(Quejas o la Maja y el Ruisenor)’을 시작으로 아브릴의 ‘카시오베아의 노래들(Cancions Xacobeas)’ 중 제9번 ‘마리아 솔리뇨(Maria Solina)’, 제12번 ‘폴리아다(Foliada)’를 들려줬다.
할프테르의 ‘아, 얼마나 아름다운 아가씨인가(Ai Que Linda Moça)’, 오브라도스의 ‘스페인 고전 가곡 작품번호 4번(Canciones Clásicas Españolas Vol.Ⅳ)’ 중 2번 ‘엘 몰론드론(El Molondron)’, 구리디의 ‘여섯 개의 카스킬라 지방의 노래(Seis Canciones Castellanas)’ 중 제1번 ‘저기 저 산 위(Alla Arriba, en Aquella Montana)’, 오브라도스의 ‘스페인 고전 가곡 작품번호 1번(Canciones Clásicas Españolas Vol.Ⅰ)’ 중 1번 ‘엘 비토’(El Vito)’까지 스페인 예술가곡의 향연을 펼쳤다.
박혜상이 바라본 스페인 음악의 본질은 정열과 고독의 공존이다. 그는 “스페인 가곡은 리듬 안에 숨은 정열과 고독, 그리고 일상적인 인간의 감정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며 “라틴 특유의 강렬함과 동시에 여백의 미가 공존한다”고 설명했고, 이런 부분을 잘 보여줬다.
소프라노 박혜상이 마포문화재단이 마련한 제10회 M 클래식 축제 ‘노래의 날개 위에’ 시리즈 두 번째 무대를 마친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소프라노 박혜상이 마포문화재단이 마련한 제10회 M 클래식 축제 ‘노래의 날개 위에’ 시리즈 두 번째 무대에서 웃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소프라노 박혜상이 마포문화재단이 마련한 제10회 M 클래식 축제 ‘노래의 날개 위에’ 시리즈 두 번째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이번 무대는 피아니스트 안드레스 사레와 함께했다. 멕시코 출신인 그는 스페인과 라틴 레퍼토리에 정통한 성악 코치이자 연주자로,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히 내한했다. 박혜상은 “유달리 스페인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여서 자주 그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며 “그의 피아노는 단순한 반주가 아니라 또 하나의 목소리처럼 작용한다”고 밝혔다.
박혜상은 ‘차세대 디바’로 통한다. 그는 “디바라는 수식어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는데 저에게는 책임에 더 가깝다”며 “화려한 결과보다는 지금의 저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을 훨씬 더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알프레도 카탈라니의 오페라 ‘라 왈리’ 중 ‘난 멀리 떠나야 해(Ebben?...Ne Andro Lontana)’와 로시니의 ‘라 단차(La Danza)’로 리사이틀을 마무리했다. 박혜상은 자신의 처음에 구상했던 그대로 무대로 끝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무대는 제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꺼낸 한편의 시입니다. 짧지만 진심을 담은 노래 한곡, 한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