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기자] “학창시절 처음으로 접한 연가곡입니다. ‘마치 첫사랑과 이루어진 기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애정하는 작품입니다. 성악과 피아노가 서로 대화하면서 16개의 노래를 한 호흡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슈만이 표현하고자 했던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테너 김세일이 마침내 ‘시인의 사랑’ 독창회를 연다.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의 시에 로베르토 슈만(1810~1856)이 선율을 붙인 연가곡을 오는 12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풀어놓는다.
음악회를 열기까지 험난했다. 꼬박 2년이 걸렸다.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인 ‘시인의 사랑’을 발매한 것은 지난 2020년 6월이다. 이를 기념해 리사이틀을 준비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두 차례나 연기되는 아픔을 겪었다. 라이브 무대를 열어 앨범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는데 팬데믹 유탄을 맞고 까맣게 속을 태웠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기다린 만큼 가다듬고 또 가다듬었다. 더욱이 세계적인 가곡 반주 피아니스트이자 빈 국립음대 교수인 마르쿠스 하둘라와 함께 무대에 올라 더욱 의미가 깊다. ‘시인의 사랑’ 앨범에서 손발을 맞췄던 환상케미를 관객 앞에서 쏟아낼 생각에 설렌다.
김세일은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 공연의 감상 포인트는 ‘상상력’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리트(독일 예술가곡)의 묘미는 무한한 상상력에 있다”며 “이번 공연도 그 상상력 안에 슈만, 하이네, 그리고 김세일이 혼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콘서트장을 방문한 분들도 이런 흥미로운 그림을 마음속에 그려보면서 노래를 들어보기를 권한다”고 팁을 줬다.
‘시인의 사랑’은 사연이 있는 곡이다. 슈만은 스승이었던 프리드리히 비크의 교제 반대에 법정싸움으로 응수하며 그의 딸인 클라라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약 5년간의 열애 끝에 1840년에 웨딩마치를 울렸다. 얼마나 행복했을까. 이 해에 약 140여곡의 명품 가곡을 작곡했다. ‘시인의 사랑’을 비롯해 ‘리더크라이스’ ‘여인의 사랑과 생애’ ‘미르테의 꽃’ 등이 줄줄이 탄생했다. 그래서 슈만의 생애에서 1840년을 ‘가곡의 해’라고 부른다.
16곡 중 첫 곡은 ‘아름다운 5월에’다. “아름다운 5월에, 꽃들이 피어날 때 내 마음에는 사랑이 싹튼다네. 아름다운 5월에, 새들이 노래할 때 나는 그대에게 내 마음을 고백한다데.” 클라라와의 사랑에 들뜬 슈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곡집 전체에 행복만 가득하지는 않다. 실연, 헤어짐, 아픔도 담겨있어 ‘러브 스토리 종합세트’다. 그래서 더 울림이 크다. 그는 “슈만의 상상력과 화성들, 그리고 그만의 애절한 선율과 가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노래하는 중에도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또한 ‘시인이 사랑’은 피아노의 위상을 한껏 끌어 올렸다. 단순한 반주를 벗어나 하나의 연주로 업그레이드했다. ‘노래와 피아노의 이중창’이라고 부를 만큼 피아노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앨범 작업에 이어 이번 독창회도 함께하는 마르쿠스 하둘라가 ‘든든한 백’이 됐다.
“피아니스트와 세밀한 호흡을 맞추기 위해 사전에 많은 대화가 필요할 수 있겠지만, 서로의 음악을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둘라와의 첫 만남은 2019년 여름이었어요. 음반 녹음을 위해 피아니스트를 수소문 하던 중 하둘라를 알게 됐어요. 빈에서 1시간 동안 첫 리허설을 했어요. 통성명만하고 바로 실전에 들어갔죠. 말은 많이 하지 않았어요. 음악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템포와 아이디어를 공유했죠. 그게 진정한 케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날의 만남을 통해 서로의 음악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다. 그리고 2020년 1월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 작업을 했다. 원래 사흘 일정을 잡았는데 김세일이 근무하는 강원대학교 입학시험 심사와 겹치는 바람에 중간에 춘천을 다녀와야 했다. 그래서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에 녹음을 끝마쳐야 했다. 그는 “몸과 마음이 급했으나 하둘라와 초집중을 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김세일은 ‘미성의 테너’다. 이번 공연은 모두 하이네의 시에 의한 슈만의 곡으로만 프로그램을 짰다.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48)’이 메인이고 ‘리더크라이스(Liederkreis, Op.24)’ ‘벨사살(Belsazar, Op.57)’ ‘두 사람의 척탄병(Die beiden Grenadiere, Op.49-1)을 들려준다. 하이네의 고유한 감수성과 슈만의 유려한 색채가 어우러져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리트의 매력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세일은 유럽에서 에반젤리스트(evangelist) 역을 맡으며 일찌감치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았다. ‘복음사가’로 번역되는 에반젤리스트는 오라토리오 등 종교음악에서 일종의 내레이터 역할이다. 한국어로 하자면 ‘누구 가라사대~’ 이렇게 말하며 극중 상황을 설명하고 해설하는 롤이다. 정확한 독일어 발음과 전달력이 요구돼 동양인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드문데 그는 자주 맡았다. 네이티브 스피커 뺨치는 발음을 공인받은 셈이다.
게다가 종교음악을 자주 연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성당에 설치된 다양한 음색의 파이프오르간을 접하게 됐다. 그래서 최근엔 오르간 해설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은 올해 ‘오르간 오딧세이’란 이름으로 세차례 오르간 연주와 성악이 함께하는 무대를 마련하는데, 그가 노래와 해설을 맡았다.
이쯤되면 김세일은 팔방미인이다. 리트 성악가, 에반젤리스트, 오르간 해설가, 대학교수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멀티 플레이어다. 하지만 이번 5월엔 다른 것은 잠시 멈추고 엑설런트한 리트 전문가로 올인한다. 김세일 때문에 더 기다려지는 아름다운 5월이다.
“예전에 네덜란드에서 공연을 하는데, 음악회가 끝나고 어떤 노인 분께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그분은 50년간 매년 빠짐없이 연주를 봐왔는데 ‘여지껏 이렇게 부르는 테너를 본 적이 없었다’라고 말하셨어요. 그 말에 엄청난 감동을 받았죠. 이번 독창회 역시 그런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잘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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