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서울국제음악제가 ‘우리들을 위한 기도’라는 주제로 오는 10월 22일부터 30일까지 모두 8번의 공연이 열린다. 사진은 지난해 공연 모습.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단 하나라도 놓치면 후회할 여덟 차례의 엑설런트 공연이 펼쳐진다. 2022 서울국제음악제가 오는 10월 22일(토)부터 30일(일)까지 열리는 가운데 클래식 팬들을 설레게 할 명품 콘서트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올해의 서울국제음악제 주제는 오랜 시간 코로나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을 위로하는 ‘우리를 위한 기도(Pray for us)’다. 8번의 공연 프로그램도 이런 의도에 맞춰 세심하게 구성했다. 자신의 결혼을 위해 작곡한 모차르트의 ‘대미사’, 영혼을 위한 펜데레츠키의 ‘카디쉬(기도)’, 타개한 스승을 기리기 위한 류재준 작곡가의 ‘현악 사중주 협주곡’, 삶과 죽음을 이끄는 신화 속 사이렌의 노랫소리를 표현한 드뷔시의 ‘녹턴’ 등 다양하게 준비했다.

아티스트 라인업도 더 막강해졌다. 상대방의 음색과 하나가 되는 동시에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는 음악가들의 무대로 채워진다. 서울국제음악제에서만 볼 수 있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인 ‘SIMF 오케스트라’는 해를 거듭하여 중심을 맡고 있는 연주자들(바이올린 송지원·김소옥, 비올라 김상진, 첼로 심준호·김민지·이정란, 클라리넷 김한, 트럼펫 최인혁)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2022년 도쿄국제콩쿠르 1위의 박하양(비올라), 도이치오퍼 오케스트라의 한이제(오보에),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객원수석 유성권(바순), 베를린 필·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 세계적 유수의 오케스트라 객원수석을 역임한 유후이 황(호른), 헝가리 오페라하우스의 수석 야노스 마티아스 도비(튜바) 등 젊은 스타 아티스트들이 새롭게 SIMF 오케스트라에 참여해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조합으로 관객을 만난다.

#1. 모차르트 곡으로만 여는 개막음악회...‘대미사, K.427’ ‘호른 협주곡 4번’ 뭉클

2022 서울국제음악제가 ‘우리들을 위한 기도’라는 주제로 오는 10월 22일부터 30일까지 모두 8번의 공연이 열린다. 사진은 지난해 공연 모습.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SIMF 오케스트라와 SIMF 합창단이 22일(토)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막음악회를 연다. 홍석원이 지휘봉을 잡고 ‘호른의 전설’ 라덱 바보락이 협연한다, 또한 소프라노 서예리,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테너 국윤종, 그리고 베이스바리톤 토마스 바우어 등이 출연한다.

인간은 오늘을 묵묵히 견디며 사는 존재다. 평화롭고 안온한 시절에도 그랬고 힘든 시련이 닥친 시절에도 그랬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은 지난 2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 숨을 죽이고 말을 아끼며 견뎠다, 마음 한구석에 희망을 품고.

올해 서울국제음악제 오프닝을 모차르트의 곡으로만 시작하는 이유는 팬데믹의 시간을 이겨낸 우리의 삶이 모차르트의 삶과 닮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평생 자신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사람이다. 천재, 신동 같은 이미지와 달리 그의 음악 인생은 마냥 순탄하지 않았다. 모차르트가 자신의 음악 세계를 마음껏 펼쳐 보인 건 20대 중반부터다. 사사건건 통제하고 간섭하던 잘츠부르크의 콜로레도 대주교에게서 탈출해 빈으로 옮기고 나서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작곡할 수 있었다.

‘오페라 돈 조반니 서곡’에 이어 연주하는 ‘대미사, K.427(미사 18번 다단조)’은 종교 음악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결혼식에 쓰겠다는 개인적인 목적으로 작곡한 곡이다. 빈으로 옮긴 후 더 이상 종교 음악을 쓰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흥미로운 일이다. 그래서일까요? 자발적 의지로 마음껏 작곡한 대미사 K.427에는 압도적 절대자에 대한 찬사보다는 행복을 갈구하는 인간의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모차르트가 과거를 딛고 미래를 꿈꾼 흔적인 셈이다.

함께 연주하는 ‘호른 협주곡 4번, K.495’에는 인간의 따스한 숨결이 가득하다. 팔다리가 아닌 폐와 호흡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이 곡에 담겨 있다. 협연자가 라덱 바보락이기 때문에 최고의 음악을 예고한다. 베를린 필 수석 출신인 그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섬세하고도 따뜻한 음색으로 유명하다.

#2. 첼로와 피아노의 섬세한 시간...게리 호프만·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듀오 리사이틀

2022 서울국제음악제가 ‘우리들을 위한 기도’라는 주제로 오는 10월 22일부터 30일까지 모두 8번의 공연이 열린다. 첼리스트 게리 호프만은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듀오 리사이틀을 연다.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첼로와 피아노로 들려주는 섬세한 시간을 준비한다. 게리 호프만과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듀오 리사이틀이 23(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팬들을 만난다.

한마디로 ‘기-승-전-첼로’의 끝판이다. 첼로와 피아노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줄 ‘기대 0순위’ 무대다. 캐나다 태생의 미국 첼리스트인 게리 호프만은 시적인 감수성과 악기의 정통함을 두루 겸비한 아티스트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러시아 태생의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다양한 국제 콩쿠르를 석권한 피아니스트다. 두 연주자는 ‘섬세함’에 있어서 좋은 짝을 이룬다.

이들이 연주할 다섯 곡의 작품 또한 첼로 리사이틀 레퍼토리로는 보석 같은 곡들이다. 먼저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쿠프랭의 ‘연주회 모음곡(바즐레르 편곡)’을 연주한다. 이어 격렬한 마지막 악장의 푸가가 백미인 베토벤 ‘첼로 소나타 5번 D 장조’, 쇼팽 만년의 걸작이자 유일한 첼로 소나타인 ‘첼로 소나타 g 단조’, 그라나도스가 스페인 화가 고야의 그림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 작곡한 오페라 ‘고예스카스’ 중 ‘간주곡(카사도 편곡)’을 들려준다. 끝으로 첼리스트로 유명했던 카사도가 작곡한 소품 ‘사랑의 속삭임’도 한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다.

#3. 될성부른 떡잎 키운다...신진음악가 초대석 ‘샤르망 콰르텟’

서울국제음악제는 ‘될성부른 떡잎’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기울인다. 25일(월) 오후 7시 30분 JCC 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신진음악가 초대석-샤르망 콰르텟’을 연다. 제1 바이올린 김혜진, 제2 바이올린 김지인, 비올라 심정우, 첼로 박시은으로 구성됐다. 멤버 전원이 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재학생들이다. 비올리스트 김상진이 함께 한다. 샤르망 콰르텟은 2022 권혁주 콩쿠르에서 실내악 부문 대상을 차지한 팀이다. 샤르망은 프랑스어로 ‘매혹적’이라는 뜻.

이들은 라벨의 ‘현악사중주 사장조’, 브람스의 ‘현악오중주 2번’을 연주한다. 그리고 서울국제음악제 작품 공모 프로젝트인 ‘나의 음악가 빛을 쏘다 시즌2’에 당선된 김지현 작곡가의 현악사중주 ‘우리에게 평화를’도 들려준다.

#4. 바리톤 토마스 바우어 리사이틀...독일 연가곡 세 작품 한꺼번에 선사

2022 서울국제음악제가 ‘우리들을 위한 기도’라는 주제로 오는 10월 22일부터 30일까지 모두 8번의 공연이 열린다. 바리톤 토마스 바우어는 리사이틀을 연다.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이 시대 최고의 리릭 바리톤인 토마스 바우어가 26일(수)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연세를 찾아온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사후 독일 가곡 바리톤 계보를 잇는 가수로서 마티아스 괴르네, 토마스 크바스토프 등의 역할론이 있었으나 그들이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탄탄하게 발전하며 계승자의 역할을 거뜬히 해오고 있는 토마스 바우어의 리사이틀이 열린다. 2019년 제11회 서울국제음악제 때 펜데레츠키 ‘누가 수난곡’의 바리톤 독창자로 처음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이번 공연에서 독일 가곡의 진수를 보여준다.

한국 관객을 위해 깜짝 놀랄만한 프로그램으로 연가곡 세 작품을 준비한다. 우선 슈만의 하이네의 시에 의한 두 개의 연가곡이다. 그 하나는 ‘리더크라이스, 작품번호 24’. 이 작품은 엄청난 수의 가곡을 쏟아낸 1840년 노래의 해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하나는 슈만의 연가곡 중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고 연주되고 있는 ‘시인의 사랑, 작품번호 48’이다. 감미롭고 서정적인 슈만 음악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 두 작품 모두 클라라와의 결혼을 앞두고 그에 대한 깊은 사랑의 감정 속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말러가 20대 중반에 직접 가사를 써서 작곡한 대표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도 부른다. 독일 가곡에서 더욱 돋보이는 그의 두성과 흉성의 매끄러운 조화는 피셔 디스카우의 밝은 고음과 한스 호터의 저음의 우아함을 맛볼 수 있는 기회다.

이 엄청난 세 작품을 독일을 대표하는 트리오인 뮌헨 피아노 트리오의 피아니스트인 도날드 줄첸과의 호흡으로 풀어낸다.

#5. 실내악 시리즈 1 : 모차르트·클럭하르트·브람스

2022 서울국제음악제가 ‘우리들을 위한 기도’라는 주제로 오는 10월 22일부터 30일까지 모두 8번의 공연이 열린다. 비올라 연주자 박하양은 실내악 시리즈에 출연한다.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SIMF 실내악 시리즈 1 : 모차르트·클럭하르트·브람스’가 25일(화)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다. 체임버 뮤직의 절정을 보여주는 화려한 무대다.

플루트 나채원, 오보에 세바스티안 알렉산드로비치·한이제, 클라리넷 채재일, 바순 백승훈, 호른 유후이 촹·라덱 바보락, 바이올린 김소옥·야쿱 하우파·김다미·송지원, 비올라 하르트무트 로데·이한나·박하양·김상진, 첼로 이경준·게리 호프만·김민지 등이 출연한다.

모차르트는 빈에 정착할 때 도움을 주었던 호른 연주자 요제프 로이트겝에게 ‘호른 오중주, K.407’을 선물했다. 호른으로부터 얻은 영감과 수준 높은 테크닉이 결합된 작품으로, 호르니스트 라덱 바보락이 모차르트가 꿈꿨던 호른 사운드로 안내한다.

모차르트의 ‘오보에 사중주, K.370’은 뮌헨 여행 중 오보이스트 프리드리히 람의 뛰어난 실력에 반해 탄생했다. 당시 오보에의 한계에 근접하는 고음을 요구하는 등 ‘작은 오보에 협주곡’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보이스트 세바스티안 알렉산드로비치는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선율 속 원숙미 넘치는 음악을 선사한다.

클럭하르트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이지만, 브람스를 이어 낭만의 시대에 고전의 아름다움을 들려주었던 작곡가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 자주 무대에 오르지 않지만, ‘목관오중주’ 만은 이 장르에서 주요 작품으로 연주되고 있다. 밝고 경쾌한 분위기에서 수준 높은 기량과 다양한 배합의 음색으로 조화로운 앙상블을 들려줘 인기가 높다.

브람스의 ‘현악육중주 1번’은 두 대의 바이올린, 두 대의 비올라, 두 대의 첼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대립하며 음악을 전개해 육중주만의 색다른 재미가 있다. 특히 2악장에서 왠지 익숙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어디서 들었을까? 여러 영화에 사용됐던 그 선율은 유전자를 타고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브람스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6. 실내악 시리즈 2 : 프랑크·드뷔시

27일(목)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SIMF 실내악 시리즈 2 : 프랑크· 드뷔시’가 열린다. 플루트 유채연, 바이올린 백주영·송지원·김소옥, 비올라 하르트무트 로데·김상진, 첼로 이정란·게리 호프만, 하프 김혜진, 피아노 김규연·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등이 출연한다.

1부는 드뷔시 말년의 작품 ‘플루트, 비올라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로 1915년에 완성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암으로 투병하던 드뷔시는 확고한 프랑스 작곡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작곡을 통해 절망적 상황에서 투쟁했다. 이 작품에 대해 드뷔시는 ‘웃을 수도 없지만, 울 수만도 없는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우울과 희망이 오묘하게 공존하는 독특한 감성으로 가득하다.

‘피아노 삼중주 사장조’에서는 인상주의의 거장 드뷔시가 아닌 18세 청년 드뷔시를 만날 수 있다. 작곡된 지 100년이 지난 1980년대에 재발견된 그의 가장 ‘신선한’ 작품이기도 하다. 드뷔시에게 움트기 시작한, 감각적으로 열린 즐거운 세계에 대한 기대가 한껏 펼쳐져 있다.

2부는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프랑크의 작품이 연주된다. ‘피아노 오중주 바단조’는 프랑크가 생의 후반인 57세에 완성한 작품으로, 응축된 감정이 내면에서 충돌하며 강렬한 폭발음을 내뿜는다. 첫 음부터 비장한 기운이 가득하며 열렬한 감정이 끊임없이 휘몰아친다. 한 음 한 음 꾹꾹 눌러 쓴 듯 밀도 높은 음들이 간절한 바람을 표현하는 듯하다. 분출하려는 열망과 억제하려는 의지가 팽팽히 맞서며 긴장되는 가운데 숨길 수 없는 갈망이 속절없이 드러난다. 쟁쟁한 실력을 갖춘 앙상블의 연주자들이 이 음악적 염원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7. 실내악 시리즈3 : 파가니니·모차르트·쇤베르크

2022 서울국제음악제가 ‘우리들을 위한 기도’라는 주제로 오는 10월 22일부터 30일까지 모두 8번의 공연이 열린다. 오보에 연주자 한이제는 실내악 시리즈에 출연한다. ⓒ서울국제음악제 제공


‘SIMF 실내악 시리즈3 : 파가니니·모차르트·쇤베르크’는 28일(금)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다. 홍석원(지휘), 서예리(소프라노), 김우재(기타), 나채원(플루트), 세바스티안 알렉산드로비치·한이제(오보에), 채재일·조인혁·김한(클라리넷), 유성권·백승훈(바순), 김홍박(호른), 백주영(바이올린), 박하양(비올라), 이정란·이경준(첼로), 임효선(피아노) 등 국내 음악계 스타와 라덱 바보락(호른)을 비롯해 야쿱 하우파(바이올린), 하르트무트 로데(비올라) 등의 세계 최고 연주자들이 무대를 빛낸다.

파가니니는 색다른 빛깔로 다가온다. 신들린 기교로 청중을 압도시킨 전설적 바이올린 연주자 파가니니는 기타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기타 사중주 3번 가장조’는 활로 켜는 현악 앙상블에 현을 손으로 퉁기는 기타가 함께하며 상냥함과 느긋함을 더한다.

모차르트는 낭만의 음악 세레나데로 밤을 밝힌다. 세레나데는 밤에 연인의 창 아래에서 부르는 감미로운 사랑노래에서 유래했다. ‘세레나데 12번 다단조’는 밝음과 어둠이 오가며 활기차게 마음을 흔든다. 특별히 이 곡은 숨결이 그대로 전해지는 관악 앙상블로 편성돼 호소력이 더욱 짙다.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달빛 아래에서 펼쳐지는 드라마로 초대한다. 피에로가 이끄는 밤은 각성과 도취의 시간이다. 무섭도록 생생한 욕망이 깨어나 휘청이도록 휘젓는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달은 눈으로 마시는 포도주를 밤새 파도에 쏟아 붓고, 무수한 물결 속에서 강렬하고 달콤한 욕망이 흐른다. 시인은 예배하며 심취하고 도취된다. 쇤베르크는 벨기에의 상징주의 시인 알베르 지로의 연작시 중 21개를 택해 3부분으로 나뉜 연가곡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에서는 성악가가 말하는 듯이 노래하며 섬뜩하고도 기괴한 느낌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한 밤의 긴 악몽으로만 여길 수는 없다. 삶과 인간에 대한 진실이 밤하늘 아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8. 류재준 ‘현악사중주 협주곡’ 세계 초연...펜데레츠키 ‘카디쉬’ 국내 초연

올해 서울국제음악제의 마지막 무대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지휘자 오코 카무가 SIMF 오케스트라, SIMF 합창단, 국립합창단, 그리고 정상급 독창자와 함께 대규모 작품을 연주한다. 30일(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먼저 SIMF의 예술감독인 류재준의 신작 ‘현악사중주 협주곡’이 세계 초연된다. 류재준의 스승인 세계적 작곡가 펜데레츠키(1933~2020)를 기리기 위해 아담 미츠키에비츠 협회의 위촉으로 작곡됐다. 류재준 특유의 신바로크주의 작법은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감흥을 느끼게 한다. 장대하고 강렬한 1악장과 침울하고 명상적인 2악장을 거쳐 마지막 3악장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극적인 구성은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백주영(바이올린), 송지원(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김민지(첼로) 등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가 포진된 현악사중주와 꿈의 관현악단 SIMF 오케스트라가 어떤 대화를 풀어갈지도 매우 기대된다.

이어지는 드뷔시의 ‘녹턴’은 제임스 휘슬러가 그린 ‘녹턴’ 시리즈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어두운 바탕에 흩뿌려지는 불꽃이나 은은한 빛줄기 등이 그려진 그의 그림은, 밤의 음침한 정취 속에서 역동적인 생명력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느끼게 한다. 구름에 가려진 미지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가 환상적인 밤의 축제에 매혹된다. 그리고 어느덧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사이렌(매혹적인 목소리로 선원들을 매료시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그리스 신화 속 반수반인)을 만나게 된다. 허밍으로 감미롭게 연주하는 합창을 들으면 사이렌의 전설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후반부는 폴란드의 소프라노 이보나 호사, 칸토르(성가의 독창부를 부르는 선창자) 제라드 에더리, 내레이션을 맡은 영화배우 슬라보미르 홀랜드와 함께 펜데레츠키의 ‘카디쉬(기도)’가 감동과 정화의 시간으로 이끈다. 한국 초연이다. 2009년 폴란드 제3의 도시 워치가 유대인 수용소 해체 65주년을 기념해 위촉된 작품이다.

게토에 체류했던 15세 소년 아브라함 시트린의 글, 예루살렘의 멸망을 애도한 예레미야의 애가, 다니엘서에 기록된 불속에 던져진 세 청년의 기도, 그리고 유대교의 기도문 ‘고아의 카디쉬’를 노래하고 이야기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재현되는 비극을 되돌아보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극이 그치기를, 그리고 앞으로 또다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하며 2022년 서울국제음악제는 막을 내린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