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추억1. 이안삼과 김상근 : ‘한국 예술가곡의 거장’ 이안삼(1943~2020) 작곡가는 1967년 3월부터 2006년 2월까지 송설당교육재단이 운영하는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했다. 스물네 살에 부임해 38년 동안 수많은 제자를 키워냈는데, 송설당교육재단 김상근 이사장도 그 중 한 명이다. 김 이사장이 기억하는 스승의 당시 모습은 샤프하고 수려한 외모에 재기발랄함이 넘쳤다.
“음악 실기 시험 때면 한 명 한 명 가곡을 부르게 하고는 딱 한 소절만 들으셨어요. 특유의 바리톤 음성으로 ‘그만, 들어가!’를 외치고는 점수를 매겼죠. 그 어떤 항변도 허용하지 않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그런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저희로서는 야속하고 아쉬운 마음에 친구들과 둘러앉아 불만을 토로하고 험담 아닌 험담을 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김 이사장은 ‘음악 선생님 이안삼’ 덕분에 한국가곡의 참맛을 알게 됐다.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중·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몇 곡은 지금도 흥얼거리며 얼추 따라 부를 수 있다. 한상억 시인의 시에 최영섭 선생이 곡을 붙여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그리운 금강산’, 가람 이병기 선생의 시조에 이수인 선생이 선율을 붙인 가을 분위기 물씬 묻어나는 ‘별’ 등도 선생님께 배웠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직업은 교사였지만, 정말로 천재적 재능을 지니셨던 작곡가였습니다. 당신께서는 그런 재능을 금전적으로 득이 되는 유행가 같은 대중적인 장르로 돌리지 않고, 오로지 겨레의 아름다운 시와 시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도록 하는데 온 정열을 쏟으셨습니다.”
#추억2. 이안삼과 서희태 : “선생님의 한국가곡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제가 가진 기억처럼 많은 분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당신의 작품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성악가의 모습을 보면서 항상 아이처럼 행복해하셨죠. 때로는 리허설 중에 무대로 뛰어 올라와 가사 전달과 음악적 표현에 대한 의견을 연주자들에게 열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지휘자 서희태도 이안삼 작곡가와 진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밀레니엄 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끌던 때에 선생님의 작품을 자주 연주하면서 처음 만났다. 그 당시 ‘베토벤 바이러스’(드라마 속 주인공이었던 강마에의 실제 롤모델이 서희태다)라는 드라마 종영 이후에 ‘MBC 가곡의 밤’을 몇 년간 맡아 지휘하면서 다시 한 번 한국가곡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였고, 때마침 만난 선생님을 통해 신작 가곡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선생님께서 작곡하신 가곡의 가치는 한국적인 정서와 서정적인 선율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이국적이면서도 과감한 시도를 서슴지 않았고, 특별히 반주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충실한 반주부를 작곡함으로써 예술적 완성도를 높인 가곡을 남겼습니다. 대부분 피아노 반주와 함께 노래하는 가곡의 특성상 노래 선율에 비해 반주 부분이 다소 빈약한 가곡들이 있는 반면, 선생님의 가곡은 충실한 반주를 보여줘 관현악으로 연주하기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죠.”
서 지휘자는 선생님의 명곡들을 많은 성악가와 한국가곡을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소개하고 더 많은 무대에서 불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내년 이안삼 가곡제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내비쳤다.
#추억3. 이안삼과 김정주 : 올해 네 번째로 준비하는 ‘이안삼 가곡제’에서 김정주 시인의 역할은 크다. 가곡 카페 ‘아리수사랑’의 대표인 그는 가곡제 사무총장을 맡아 첫 가곡제부터 지금까지 궂은일을 도맡고 있다.
“가까이에서 함께하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만난 선생님은 때로는 감정의 기복이 크고 즉흥적이며, 개성이 강하고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만나는 선생님은 멜로디가 막힘없이 유연하고, 화성의 진행이 질서 있고 안정되어 완성도 높은 하모니를 이끌어 내는 등 매우 신중하고 섬세합니다. 어느 것이 진짜 선생님 모습인지 궁금할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선생님은 작품을 위해서라면 모든 열정을 치열하게 쏟아 부었고, 시에 대해 공감이 안 될 때는 과감하게 내려놓을 정도로 작품 앞에 솔직하셨고, 좋은 노랫말은 시가 멜로디를 이끌어 가기 때문에 작품의 길이 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지어진 곡들이 성가곡, 가곡, 기악곡, 합창곡 등을 모두 합해 350여 곡이 됩니다.”
가곡제를 개최하는데 필요한 예산은 20여명 참여시인들의 후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선생의 모교인 김천중·고등학교와 장남 이시섭 원장, 애호가분들의 후원도 큰 힘이 된다. 아직도 잠자고 있는 선생님의 많은 곡이 무대 위에서 연주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계속해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 중 하나다. 그런 점에서 이번 4회 가곡제에 참여는 했지만, 대신 선생님의 다른 곡이 연주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한상완 시인과 작사가이기도 한 김성희 작곡가의 ‘아름다운 양보’가 빛났다.
“선생님께서는 작품마다 거의 오케스트라 편곡까지 완성해 놓을 정도로 작품에 대한 미래를 미리미리 준비해 놓으셨기에 내년 제5회 가곡제는 전곡 이안삼 작품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웅장하고 화려한 오케스트라 협연을 목표로 꿈을 꾸고 있어요.”
김 시인은 해마다 빠지지 않고 이안삼 작곡가를 기리는 행사도 열고 있다. 올해도 평소 선생님과 소중한 인연을 맺은 시인, 작곡가, 애호가들과 함께 지난 10일 분당메모리얼파크를 방문해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김상근 이사장, 서희태 지휘자, 김정주 시인처럼 이안삼 선생과 귀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그를 추억하며 ‘제4회 이안삼가곡제’를 연다. 오는 8월 15일(목) 오후 7시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열린다.
정상의 성악가 13명이 출연한다. 소프라노 김민지·김성혜·신승아·이미경·임청화·조정순, 메조소프라노 이주영, 테너 김성록·이정원·이현·하만택, 바리톤 송기창·이응광이 나온다. 이 중 신승아·이미경·이주영·김성록·하만택·이응광은 첫 출연이다.
이성하와 장동인이 번갈아 피아노 반주로 성악가들과 호흡을 맞춘다. 김정주·장장식 시인이 기획 및 진행을, 김문기 작가가 사진 및 영상을 맡았다.
이안삼 작곡가의 대표곡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나 이리하여’(이귀자 시) ‘갈망의 봄’(조재선 시) ‘비록’(김정주 시) ‘나지막한 소리로’(고영복 시) ‘구절초 마을’(노중석 시) ‘매화연가’(황여정 시) ‘세월의 안개’(안문석 시) ‘들꽃의 향기처럼’(서공식 시) ‘우리의 사랑’(서영순 시) ‘시실리’(윤은경 시) ‘솟대’(김필연 시) ‘주목’(심응문 시) ‘메밀꽃 필 무렵’(한여선 시) ‘그대 앞에 봄이 있다’(김종해 시) ‘마음 하나’(전세원 시) ‘내 마음 그 깊은 곳에’(김명희 시) ‘그대가 꽃이라면’(장장식 시)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문효치 시) 등 18곡을 연주한다.
김성희·박경규·신귀복·윤학준·장동인·정덕기·한성훈 작곡가의 작품도 들려준다. ‘봄이 왔네’(공한수 시·장동인 곡) ‘님마중’(이명숙 시·한동훈 곡) ‘잔향’(이연주 시·윤학준 곡) ‘녹차 한 잔’(고옥주 시·정덕기 곡) ‘물망초의 노래’(최숙영 시·김성희 곡) ‘사랑을 그리며’(이향숙 시·신귀복 곡) ‘떠날줄 알게 하소서’(유자효 시·박경규 곡) 등 7곡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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