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민정 연출가 “네 작품 3막만 따로 떼어 공연...조명으로 쫄깃 긴장감 선물”

내달 라벨라오페라단 갈라 콘서트 2편 연출
“맛보기로 전막공연 보게 하는 힘 발휘할 것”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6.21 17:43 | 최종 수정 2022.06.21 17:56 의견 0
홍민정 연출이 다음달 무대에 올리는 라벨라오페라단 갈라 콘서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민은기 기자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오페라 3막만 따로 떼어내 통째로 올립니다. ‘기승전결(起承轉結)’에서 ‘전결’에 포커스를 맞추는 거죠. 아마 이런 갈라 콘서트는 국내 처음일겁니다. 한마디로 베르디와 푸치니의 대표작, 그 중에서도 스토리가 가장 고조되는 하이라이트 3막을 모아 놓은 음악회죠.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겁니다.”

오페라 연출가 홍민정이 7월을 앞두고 달뜬 기분을 드러냈다. 다음달 11일(월)과 13일(수) 롯데콘서트홀에서 그랜드 갈라 콘서트 두 편을 잇달아 연출한다. ‘3막의 비극’과 ‘베르디&베리즈모’. 공연 타이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홍 연출은 이번에 라벨라오라단과 첫 호흡을 맞춘다. 당연히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오페라단을 방문했을 때도 무대에서 영상을 어떻게 쓸 것인지 논의하고 있었다. 멋진 작품을 뽑아내기 위해 ‘이거하면 어떨까 저거하면 어떨까’ 묘안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라벨라오페라단 이강호 단장이 소극장오페라축제에서 제가 연출한 작품을 보고 러브콜을 보냈어요. 저를 알아봐줬으니 기분이 좋았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3막의 비극’과 ‘베르디&베리즈모’라는 제목으로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듣는 순간 ‘정말 재미있겠는데’ ‘이거 꼭 해야한다’ 퍼뜩 욕심이 났어요.”

그는 지난 4월과 5월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에서 구둣방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텃밭킬러’를 연출했다. 할머니 ‘골륨’은 남의 집 텃밭에서 먹을 것을 훔쳐 알코올중독 아들과 두 손자를 먹여 살린다. 이 가족의 유일한 재산은 골륨의 금니 3개인데, 가족들이 이 금니를 서로 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오페라판 기생충’이라는 입소문이 붙으며 인기를 끌었다. 공연을 눈여겨 본 이 단장이 캐스팅을 제안했다.

홍민정 연출이 인터뷰를 마친 뒤 라벨라오페라단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은기 기자

기대도 크지만 솔직히 걱정도 앞선다. 오페라는 엄청난 무대 세트와 많은 등장인물이 동원되는 종합예술이다. 정식 오페라였다면 물량공세를 펼치겠지만 이번엔 핵심만 보여주는 갈라 콘서트다. 출연자들이 시대적 배경에 맞게 의상을 차려 입고 영상도 적절히 활용하지만 상대적으로 사이즈 면에서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음을 슬쩍 내비쳤다.

“빈약한 무대를 어떻게 채울지 여러 가지 솔루션을 고민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게 빈 무대는 괜찮습니다. 그 대신 조명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조명으로 조여 줄 부분을 조여주면 극적 긴장감이 부여됩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누구를 찔러 죽이는 장면에서 그냥 일반적인 전체 조명을 비추면 밋밋합니다. 허전하죠. 하지만 살인 장면에만 집중조명을 쏘거나, 살인자의 얼굴에만 역광을 비추면 쫄깃함이 더블이 됩니다. 소리까지도 눈에 보이게 해주는 것, 바로 빛의 마술입니다.”

‘3막의 비극’에서는 네 작품을 선보인다. 베르디 ‘라트라비아타’와 ‘리골레토’, 푸치니 ‘라보엠’과 ‘토스카’다. 국내 팬들의 최애작이다. 여자 주인공인 비올레타, 질다, 미미, 토스카는 결국 모두 죽는다. 모두들 새드엔딩을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감동을 이끌어낼지 궁금하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제작진은 그 뻔한 상황 속에서도 무엇인가 뭉클한 것을 끄집어내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봐도 역시 좋구나 하고 느끼는 게 바로 고전의 힘인데, 그 길로 인도하는 게 바로 이들 창작자들이죠. 네 작품의 네 가지 죽음은 모두 색깔이 다릅니다. 죽음의 원인, 죽음을 대하는 등장인물의 자세, 죽음 이후의 영향 등을 서로 비교하는 게 이번 갈라 콘서트의 감상 팁입니다. 미주알고주알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고 상징적 이미지를 적절히 사용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만들 겁니다.”

홍민정 연출이 다음달 무대에 올리는 라벨라오페라단 갈라 콘서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민은기 기자

라인업을 구성한 가수들이 어벤저스급이다. ‘라트라비아타’는 소프라노 구민영(비올레타 역)·테너 김지민(알프레도 역)·바리톤 장성일(제르몽 역)이 출연하고, ‘리골레토’는 소프라노 이정은(질다 역)·테너 이재식(만토바 공작 역)·바리톤 박경준(리골레토 역), 메조소프라노 신성희(막달레나 역), 베이스 양석진(스파라푸칠레 역)이 나온다.

테너 조철희(로돌포 역)·소프라노 김지현(미미 역)·바리톤 김원(마르첼로 역)·소프라노 한은혜(무제타 역)는 ‘라보엠’에서 환상 케미를 뽐내고, 소프라노 강혜명(토스카 역)·테너 김중일(카바라도시 역)은 ‘토스카’에서 합을 맞춘다.

홍 연출은 “대단한 성악가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게 되어 행복하다”며 “거기에 더해 지휘를 맡은 두 분도 ‘든든한 빽’이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번갈아 가며 포디움에 서는 권성준 지휘자는 동양인 최초로 독일 쇠네베크 오페레타 서머 페스티벌 수석지휘자로 선발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텃밭킬러’에서 이미 끈끈한 동지로 뭉친 경험이 있다. 또한 박해원 지휘자는 2019년 한국지휘자협회 주관 지휘 캠프에서 우수 지휘자로 선정됐다. ‘리타’를 지휘해 소극장오페라축제에서 지휘부문 예술상을 받았다. 홍 연출 역시 연출부문 예술상을 꿰찼으니 두 수상자가 펼칠 협업도 관심 폭발이다.

‘연출가 홍민정’의 길로 들어선 사연이 재미있다. 이화여대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했는데 어느날 지하철역에 붙은 뮤지컬 배우 공개 오디션 모집 광고를 보고 덜컥 응시했다. 결과는 합격. 어렸을 때 동네 꼬마들이 늘 그렇듯 학원가서 피아노 치고,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자장가로 듣고, 유명 지휘자가 음악에 대해 소개하고 연주하는 오페라 렉처 앨범을 들으며 살짝 음악의 꿈을 키우기는 했지만 밥벌이로서의 로망은 없었다. 다만 뮤지컬과 오페라처럼 ‘음악과 극이 결합된 저런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품고 있었다.

“휴학까지 하고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오르니 끝없는 지적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내가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엘리트적 허영심’, 뭐 그런 것이 발동한 거죠. 어디서 공부할까 찾아보니 한예종에 오페라 연출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입학해 ABC부터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했죠. 오페라로의 인생 전환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다음달에 갈라 콘서트 두편을 연출하는 홍민정 연출가가 라벨라오페라단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은기 기자

‘베르디&베리즈모’도 설레는 프로그램이다. 후기 낭만주의를 이끈 베르디의 작품(‘나부코’ ‘일 트로바토레’ ‘돈 카를로’)과 베리즈모의 대표주자인 푸치니(‘토스카’), 레온카발로(‘팔리아치’), 마스카니(‘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조르다노(‘안드레아 셰니에’)의 대표곡들을 대방출한다.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넘어가는 시대의 흐름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굿찬스다. 비참한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다루고 있지만, 그런 엄혹한 리얼 라이프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에 홍 연출은 “오페라를 조금 덜 보려 한다. 오히려 연극·무용·미술 등 다른 장르를 감상하려고 노력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카르멘’을 예로 들었다. “똑같은 작품을 여러 사람이 연출하잖아요. 너무 좋은 작품을 보면 ‘저 장면에 저런 효과를’ 하면서 깜짝 놀랍니다. 그런데 이게 하나의 이미지로 머리에 깊숙이 박혀요. 그리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카피’를 하죠. 완전 역효과입니다. 뭔가 얻고 싶으면 타장르를 파야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베르디&베리즈모’에는 소프라노 오희진·이다미·조현애, 테너 김중일·이재식·유현욱, 바리톤 김원·최병혁, 베이스 양석진·송일도이 출연한다. 지휘는 대구시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이자 이탈리아 리보르노의 골도니극장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인 박지운이 맡는다. ‘베르디&베리즈모’와 ‘3막의 비극’ 모두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메트오페라합창단이 힘을 보탠다.

“연출은 결국 귀로 듣는 음악을 눈에 보이게 하는 작업입니다. 클래식이라는 이름값에 짓눌려 쉽게 감상할 수 없었던 오페라 장르를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죠. 갈라 콘서트는 기본적으로 짧게 짧게 잘라 가야하기 때문에 조금 더 친절하게 작품을 포장해야 합니다. 3막 장면과 특정 아리아만을 듣고도 전막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연출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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