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7명이 삼중주·사중주·오중주 뚝딱 변신....‘트랜스포머’ 앙상블오푸스

브람스 곡으로 제21회 정기연주회
함께해 더 빛나는 실내악 매력 전달

민은기 기자 승인 2023.03.27 18:43 | 최종 수정 2023.03.27 18:48 의견 0
앙상블오푸스가 브람스의 ‘현악 오중주 1번’을 연주하고 있다. 왼쪽부터 백주영, 송지원, 김상진, 이한나, 김민지. ⓒ오푸스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솜씨 좋은 장인 한 명으로도 좋은데 무려 일곱 명이 뭉쳤다. 바로 백주영(바이올린), 송지원(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이한나(비올라), 심준호(첼로), 김민지(첼로), 문지영(피이노)으로 이루어진 ‘앙상블오푸스’다. 모든 연주자가 솔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실력파다. 혼자 있어도 빛나는데 더 엑설런트한 음악을 선보이겠다며 7명이 케미를 맞췄다. 한마디로 ‘어벤저스 앙상블’이다.

2010년 창단했다. 모두가 국제적인 명성과 뛰어난 연주력을 갖추고 있다. 작곡가 류재준이 예술감독을,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이 리더를 맡고 있다. 이들의 경쟁력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콘텐츠다. 국내외의 유능한 작곡가·연주자와 교류하며 개성 있는 시그니처 프로그램으로 승부한다. 매번 새롭고 매혹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언터처블이다.

앙상블오푸스가 2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제21회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이날 프로그램은 ‘올 브람스(All Brahms)’, 즉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집중탐구의 시간을 마련했다. 7명의 연주자가 뚝딱 변신해 삼중주, 사중주, 오중주 등 풍성한 실내악을 선사했다. ‘트랜스포머 앙상블오푸스’다.

흔히 브람스는 전통을 고수한 보수주의적 인물로 꼽혀왔지만 20세기 들어 아놀드 쇤베르크는 그를 진보주의자라고 평가했다. 대담한 화성 진행, 다양한 리듬 구조, 발전적 변주 기법 등의 혁신적 특징이 브람스의 작품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음악평론가 서주원은 “브람스는 대립적 요소조차 오래도록 묵묵히 품고 음악 안에서 하나로 유연하게 통합시켰다. 따라서 브람스의 작품 안에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전통적 성격과 실험적 특징은 충돌하지 않고 색다른 조화를 이룬다”고 평가했다. 앙상블오푸스는 브람스의 실내악 작품에 깃든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을 팽팽한 긴장감과 생동감으로 풀어놓았다.

이한나(비올라), 문지영(피아노), 김민지(첼로)로 구성돤 앙상블오푸스가 브람스의 ‘두개의 가곡’을 연주하고 있다. ⓒ오푸스 제공


먼저 이한나(비올라)·김민지(첼로)·문지영(피아노)이 팀을 이뤄 ‘두 개의 가곡(Op.91)’을 들려줬다. 원래 이 곡은 성악·비올라·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성악 파트는 낮은 음역인 알토를 위해 작곡했는데, 작곡가 류재준이 성악 부분을 첼로로 편곡해 비올라·첼로·피아노를 위한 삼중주로 바꿨다. 첼로가 가수로 나선 셈이다. 이처럼 원재료를 재해석해 새로 지지고, 볶고, 삶아 창작품을 만들어내는 스킬은 류재준과 앙상블오푸스의 특기다.

‘두 개의 가곡’은 브람스와 평생 우정을 나눴던 절친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과 관련이 있다. 제1곡 ‘가슴 속 충만한 동경’은 독일 낭만파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시에 곡을 붙였다. 가정불화를 겪고 있는 브람스 부부의 화해를 바라며 작곡했다. 넉넉한 자연을 바라보며 요동치는 마음이 잔잔해지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부부는 예전의 사랑을 되찾지 못했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비올라(이한나)와 피아노(문지영)의 긴 서주로 시작돼 첼로(김민지)가 노래했다. 무대 스크린에 일부러 악보와 가사를 띄워 관객 모두가 마음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게 했다. 센스 넘치는 친절이다. “숲이 얼마나 엄숙하게 서 있는가요.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 섞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속삭여 잠을 청합니다. 끊임없이 휘젓는 그대 동경이여, 가슴을 흔드는 갈망이여. 바람과 새들의 속삭임, 아 더 이상 내 영혼이 아주 먼 곳으로. 바람과 새들의 속삭임, 아 더 이상 내 영혼이 끝없이 멀리 있는. 별을 향한 내 두 눈이, 바람과 새들이 속삭입니다.”

제2곡 ‘성스러운 자장가’는 요하임 부부의 첫째 아들이 태어난 것을 기념해 작곡했다. 요하임 부부는 아들의 이름을 요하네스 브람스에서 따와 요하네스라고 지었다. 가사는 스페인 시인 로페 드 베가의 작품을 독일 시인 에마뉴엘 가이벨이 번역한 시를 사용했다. 자장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예술적 감상을 위해 만든 곡이다. 이한나·김민지·문지영은 아기가 잘 수 있도록 천사들에게 바람 부는 종려나무를 진정시켜달라고 간청했고, 매서운 바람과 지상의 고통을 묘사한 뒤엔 천사들에게 잠든 아이의 안식과 보호를 다시 간청했다.

백주영(바이올린), 문지영(피아노), 김상진(비올라), 김민지(첼로)로 구성돤 앙상블오푸스가 브람스의 ‘피아노 사중주 3번’을 연주하고 있다. ⓒ오푸스 제공


다음은 백주영(바이올린)·김상진(비올라)·심준호(첼로)·문지영(피아노)이 ‘피아노 사중주 3번 c단조(Op.60)’를 들려줬다. 거세게 몰아치는 운명의 폭풍 속에서 때때로 안온한 순간이 나타나지만 결국 모든 것이 절망에 잠식된다(1악장). 보통 두 번째 악장은 느리게 흐르면서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특이하게도 스케르초로 구성돼 거의 쉼 없이 어둡고 격동적으로 휘몰아치며 급박한 분위기를 이어 간다. 헤비메탈의 배틀이 연상됐다.(2악장)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집중을 방해하는 한 관객의 벨소리가 울렸지만 백주영은 여유 있는 미소로 넘겼다.

3악장에 들어 비로소 차분한 선율과 함께 긴장이 한결 완화됐다. 첼로가 문을 열었고, 뒤를 이어 첼로와 바이올린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자 비올라 역시 “나도 끼워줘”라며 가세했다. 네 사람은 그윽하고도 풍부한 선율미를 펼쳐냈는데, 사랑에 대한 열망과 호소라기보다는 그리움과 우수가 더 짙게 배어 흘렀다. 마지막 4악장은 왈칵 불길한 기운이 몰려왔다. 피아노는 끝없는 탄식을 토해내며 체념의 극적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브람스가 ‘피아노 사중주 3번’을 처음 구상한 것은 20대 초반이었고 40대에 접어들어 완성했다. 작품 하나를 20년 동안 가슴에 품었던 셈인데 브람스, 슈만, 클라라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떠올라 애절했다.

앙상블오푸스가 브람스의 ‘현악 오중주 1번’을 연주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상진, 송지원, 이한나, 백주영, 김민지. ⓒ오푸스 제공


바이올린 2대(백주영·송지원), 비올라 2대(김상진·이한나), 첼로 1대(김민지)로 구성된 ‘현악 오중주 1번 F장조(Op.88)’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힘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다섯 명의 연주자는 귀를 쫑긋 세우고 눈빛을 교환하며 봄의 기운과 전원의 분위기를 엮어 나갔다. 브람스의 작품 가운데 드물게 밝고 여유로웠다. 약동하는 생명력이 충만하다. 비올라 2대로 중간 성부를 강화해 음향이 더욱 충실해졌다.

1악장을 이끄는 두 개의 주제는 모두 밝고 따뜻하고 생기 있어 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2악장은 특이하다. 느린 악장과 스케르초가 하나로 통합된 형태다. 슬로우와 퀵이 교대로 나타난다. 3악장은 빠르고 힘찬 피날레를 보여줬다. 치밀한 전개에 가속이 붙으며 모든 악기가 전력질주한 후 의기양양하게 끝을 맺었다.

관객의 박수갈채가 이어지며 몇 번의 커튼콜 후 김상진은 “브람스는 두 개의 현악 오중주를 남겼는데, 1번은 너무 빡셔 잘 연주되지 않는다”며 오랜 연습과정이 있었음을 넌지시 내비쳤다. 앙코르는 ‘아메리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안톤 드보르자크의 ‘현악오중주 내림 E장조(Op.97)’의 2악장을 연주했다.

공연을 마친 류재준 예술감독은 “이번 공연은 꼬박 2년을 준비했다”며 “부지런한 앙상블오푸스는 2025년 공연 준비도 이미 착수했다”고 말했다. 앙상블오푸스의 제22회 정기연주회는 ‘류재준 & 최우정의 소나타스’라는 타이틀로 오는 9월 8일 팬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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