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의 ‘비포장도로 삶’...피아니스트 임현정 신작에세이 ‘블리스’ 출간

세상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지 않은 음악가
​​​​​​​강렬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고귀한 삶 강조

김일환 기자 승인 2024.06.25 18:48 의견 0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8년 만에 신작 에세이 ‘블리스’를 출간했다. ⓒ클래식비즈DB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클래식 역사상 가장 어린 스물네 살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을 발매한 피아니스트. 콩쿠르는 아예 쳐다보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 데 열중하는 피아니스트. 한국인 최초로 빌보드 클래식 차트와 아이튠즈 클래식 차트 1위를 하고도 편한 고속도로 대신에 비포장도로를 걷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이름 앞에 붙는 다양한 수식어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고집스러움이 엿보이는 표현들이라는 점이다. 그가 첫 에세이 ‘침묵의 소리’를 내놓은 지 8년 만에 신간 ‘블리스’(크레타·248쪽·1만9000원)를 출간했다. 블리스(Bliss)는 ‘더없는 행복’이라는 뜻이다. 책 표지에 ‘내 안의 찬란함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아래쪽에 있는 “재능이란 어떤 것을 강렬히 열망하면서 발생하는 갈망이다”라는 말이다.

이 책은 수많은 좌절을 이겨내고 대중 앞에서 멋진 연주를 펼치는 음악가로서의 모습, 더 나아가 음악과 자기 자신을 하나로 묶어 개인의 영성을 찾으려 애쓰는 자연인 임현정의 모습을 실었다. 임현정은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자신의 지위를 벗어던지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며 숭고하고 고귀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2024년 6월 기준으로 조회수 1220만 회에 육박하는 ‘터키 행진곡’ 연주처럼 열정이 넘치고, 남들과는 다른 행보로 늘 궁금증을 자아내는 연주자 임현정은 스스로 기획사를 차려 기획자를 자처하고, ‘인터스텔라 오케스트라’를 창립해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많은 기회를 선사한다. 한 명의 독립된 예술인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임현정만의 독보적인 시선과 글로 완성해 이 책에 담았다.

임현정은 신작 에세이 ‘블리스’에서 도전, 뻔뻔함, 무한함, 당당함, 사랑, 연주의 가치 등을 주제로 집필한 열아홉 편의 글을 선보인다. 작가에게 피아노와 연주는 삶의 모든 것이다. 피아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홀로 유학을 선택했고, 순수한 음악 그 자체만을 탐구하기 위해 콩쿠르를 거부하는 등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연주하기란 오만함임을 알지만, 예술의 심연을 오롯이 느끼려 오늘도 쉼 없이 건반과 마주한다. 특히 클래식계의 정형성과 권위에서 탈피하고자 애쓰는 그는 매일매일 위대한 작곡가들의 예술성과 뻔뻔함을 동경하며,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길을 나아가려 노력한다. 예술의 숭고함을 이해하고, 본질을 깨닫고,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은, 아마 그가 피아노와 함께하는 인생에서 더 깊고 길게 이어나갈 것이다.

한 개인의 작품 연주가 아닌 시공간을 뛰어넘어 마음으로 진실하게 표현하는 임현정의 음악은 무척이나 진솔하다. 책에 담긴 글 또한 그의 음악처럼 거침없고, 섬세하다. 자기의 길을 아직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이,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하는 이, 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이에게 ‘단 하나의 숭고한’ 사람이 되라고 조언한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8년 만에 신작 에세이 ‘블리스’를 출간했다. ⓒ크레타 제공


세 살부터 피아노를 시작해 열두 살에 홀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던 임현정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라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나아갔다. 하지만 피아노를 제쳐두고 오롯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다. 어떤 것에 너무 의존하고 집착하면 내 삶과 존재가 괴로울 것으로 생각했다. ‘피아노가 없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음악 없이, 피아노 없이 나의 인생은 무의미해지는가?’ ‘음악인이 아닌 임현정은 더 이상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등의 생각을 거쳐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는지?’에까지, 근본적인 질문에 다다랐다.

‘파트 1. 찬란한 나의 자유 앞에서’는 경쟁 사회에서 고독한 이들에게 외치는 임현정의 조언, ‘파트 2. 죽음과 빛 사이에서’는 피아노 외길 인생에서 본 연주의 죽음과 빛을 다룬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은 지금 당장 제일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최고로 잘난 사람일지라도 발전을 멈추거나 제자리걸음만 한다면 어느 순간 뒤처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 얼마나 똑똑하고 잘났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지 체크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73쪽)

내가 생각하는 ‘음악인으로서의 자유’란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음악을 청중에게 자유롭게 전달하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함께 상생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진정한 예술적 자유가 성립된다. 예술가가 원하는 곳에서, 진실로 원하는 예술을, 원하는 사람에게 나누면서 독립된 예술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92쪽)

‘파트 3.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길’에서는 인생의 숭고함과 본질에 관한 고찰을, ‘파트 4. 음악이 가르쳐 준 것, 인생에서’는 음악에서 배운 사랑과 가치를 임현정만의 언어로 전한다.

존경받고 존중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떳떳하고도 빛나는 과정이 존재해야만 한다. 묵묵히 충실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믿음직스럽게 살면 된다. 그것이 바로 빛나는 과정이다. 성공은 자연스레 오는 결과일 뿐이라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다. 그 빛나는 과정만 있다면.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이 따라오지 않았다고 한들 슬퍼하지 마라.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뜻밖의 길이 열릴 수도 있으니.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그 성공이 오히려 더 넓은 세상을 가리는 일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미지의 세상을 믿어보자. (161~162쪽)

예술에는 어떤 특정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고 최상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예술인의 수만큼 정답이 존재한다. 감정 팔레트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며 ‘이것’이라고 가슴을 관통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191쪽)

임현정은 자신이 겪은 경쟁과 음악계에서의 소외를 글로 풀어냈다. 그 속에서 성장과 자유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30년이 넘는 피아노 외길 인생에서 삶의 본질과 행복을, 아픔과 다독임을 깨달았다. 본질을 깨닫자 유유히 흐르는 게 인생임을 알았다. 그는 독자에게 스스로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고,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조화로운 자신만의 색채를 찾으라고 말한다.

‘최연소’ ‘최초’ ‘최우수’ ‘천재’라는 타이틀을 달고 전설의 기획사 EMI 클래식스와 계약해 한국인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음반을 전 세계로 발매한 피아니스트임에도 임현정은 ‘국제 콩쿠르 1위’ 같은 타이틀이 없어 오랫동안 한국에서 데뷔무대를 갖지 못했다.

국내 최초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를 달성하고 나서야 한국에서 가장 큰 무대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할 수 있었다. 평생 ‘불림’에 의존해야 하는 아티스트의 숙명을 받아들일 수 없던 임현정은 직접 기획사를 창립해 실현하고자 했던 공연을 자유롭게 펼치고 있다.

그동안 클래식 공연에서는 볼 수 없던 ‘Q&A 콘서트’와 즉석에서 관객의 신청곡을 받아 곧바로 연주하는 ‘신청곡 콘서트’를 세계 최초로 시도했다. 한발 더 나아가 청중의 멜로디를 받아 즉석에서 즉흥 연주하는 ‘신청음 콘서트’를 국내 최초로 개최했다. 이는 경직된 클래식 문화를 자유롭고 유연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그의 소망이기도 하다. 또 오케스트라를 창립해 젊은 음악인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며 지휘자이자 음악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임현정은 신간 ‘블리스’에서 세상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기 전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각자 특정한 분야에서 유일무이하고 변화무쌍하게 가능성과 재능을 발휘하는데, 자신이 성장하고 있는지 체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또 하나의 도전을 향했다. 80명의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직접 솔로 버전으로 편곡해 독주회를 열었다.

존재와 행복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를 해보고 그의 말처럼 ‘강렬하게 현재를 느끼고 현재로 존재’하는 삶을 살아보자. 큰 행복만 중요한 게 아니라 기쁨과 만족감을 찾아 끌어내 사는 게 중요하다. 이 책은 진짜 자신을 찾고 싶은, 꿈 앞에 좌절만 했던, 현실에 방황하는 고독한 이들에게 건네는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깨달음을 향한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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