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들어있어요. 또 베이스의 묵직한 보이스도 들어있고요. 모차르트의 최대 특기는 오페라잖아요. 구석구석 살펴보면 피아노곡에도 이런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차고 넘칩니다. 여기에 포커스를 맞춰 훨씬 더 진하고 강렬한 소리를 선사할 겁니다. 혹독한 비판을 받을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18곡)을 연주하는 여정에 나선다. 여기까지는 여느 피아니스트들과 똑같다. 그러나 결이 다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해석을 한다. ‘혹독한 비판’까지 감내하겠다는 선언에서 굳은 결의가 느껴진다.
7월 6일(토)·11월 1일(금)·11월 2일(토) 사흘에 걸쳐 네 번의 리사이틀을 연다. 한창 공연 준비로 바쁜 조재혁을 지난달 26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아르투르 슈나벨이 ‘아이가 치기엔 너무 쉽고 어른이 치기엔 너무 어렵다’고 정리한 모차르트 음악을 꺼내든 이유를 설명했다.
“제가 도전적이잖아요. 모차르트는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하다는 선입견을 깨고 싶었어요. 저만의 색깔로 칠한 ‘듣보잡 해석’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신동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가볍고 여리게, 그리고 옅은 컬러로만 연주하는 것을 정석으로 여겨왔던 테두리를 벗어나 오페라에 근접한 음악을 선물하려고 합니다.”
조재혁은 요즘 오페라에 꽂혀 있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 표현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세밀한 게 마음을 흔든단다. 그러면서 성악가들에 대한 로망을 내비쳤다. “바이올린, 첼로, 오보에, 플루트 등 다른 악기는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수는 부럽다. 오로지 목소리 하나만으로 격정과 열정, 아쉬움과 회한을 자유자재로 표현한다. 그래서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등 오페라를 많이 참고해 피아노에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피아노의 기능적 발전도 과감한 챌린지에 한몫했다. 바흐와 헨델,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시대에 비해 기술적으로 더 많이 향상됐다. 이런 변화와 맞물려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오케스트라보다 더 팔색조 변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차르트를 가만두면 안되겠다’고 소속사 목프로덕션 대표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럼 ‘리사이틀을 하자’라며 덜컥 역제안을 해서 이번 프로젝트가 탄생했다”고 공개했다. 실천력 갑 아티스트에 실천력 갑 대표의 찰떡 호흡이다.
소나타 전곡 연주는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완성된다. 첫날인 7월 6일 오후 2시 공연에서는 ‘소나타 1·6·14·16번’과 ‘환상곡 c단조’를 연주한다. 이어 같은 날 오후 8시 공연에선 ‘소나타 3·4·8·9·13번’을 들려준다. 오는 11월 1일 세번째 공연에서는 ‘소나타 2·12·15·17번’을, 11월 2일 마지막 공연에선 ‘소나타 5·7·10·11·18번’을 선사한다.
첫 공연에 1번을 넣었고, 마지막 공연에 18번을 넣었다. 이걸 기초로 해서 러닝타임, 조성, 작곡 순서 등을 고루 고려해 프로그램을 짰다. 특정한 시기에 편중되지 않도록 최적의 조합을 찾았다.
‘쉬운 소나타’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가장 대중적인 16번에 대해서 언급했다. 전국의 피아노 학원 앞을 지날 때면 늘 듣던 곡이다. “저도 어렸을 때 처음 음표 공부하고 ‘타자’치듯 연습했다”며 “이번 공연에서는 제 스타일의 독특한 연주법으로 재창조한다”고 말했다.
첫날 공연은 하루 두 차례 열린다. 무슨 중요하고 특별한 의미가 있느냐고 묻자 “대관 날짜와 시간이 그것밖에 없어 그렇게 했다”며 “청중도 힘들고 연주자도 힘든 게 사실이지만 통째로 모차르트를 머릿속에 넣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고 말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 마인드가 읽힌다.
조재혁은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뉴욕 맨해튼 음악대학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어드 스쿨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맨해튼 음악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페인 마리아 카날스 콩쿠르 1위, 모나코 몬테카를로 피아노 마스터즈 국제콩쿠르·이탈리아 레이크꼬모 국제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흠잡을 데 없는 테크닉과 섬세함을 겸비한 연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여섯 살 때 유치원 선생님의 권유로 피아노를 시작했다. 서울 예고 1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행을 권유한 사람은 ‘1세대 피아니스트’ 한동일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1950년대에 신동 소리를 듣던 그는 만 13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시작으로 줄리어드에서 학사·석사를 마쳤고, 1960년대에 이미 25개국에서 연주하며 명성을 쌓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중앙대에서 하는 여름 캠프에 참가했어요. 한동일 선생님께 레슨을 받았는데, 부모님께 ‘재혁이를 미국으로 보내라’라는 편지를 쓰셨어요. 어린 나이부터 미국생활을 했기 때문에 한글로 편지를 쓰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는데도 삐뚤삐뚤 정성스럽게 쓰셨죠. 정말 고맙고 고맙죠.”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봐준 덕분에 미국행이 추진됐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으로 떠나기 까지는 꼬박 3년이 걸렸다. 지금처럼 조기 유학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더욱이 병역의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여권을 만드는 일은 바늘구멍이었다. “아버지가 고생을 많이 했다. 아들을 위해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넣었다. 그 덕에 규정이 바뀌었고 유학을 떠나게 됐다. 아버지가 하루에 두 번씩 서울을 방문하기도 하면서 드디어 여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꽃길만 걷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스물여덟 살에 위기가 찾아왔다. 피아노가 싫어졌다. 피아노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갑자기 회의감이 들었다. 이것이 땅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결정적 인생 포인트가 됐다.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의대를 갈까, 아니면 법대를 갈까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그동안 뒷바라지 해준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럼 해봐라’라며 흔쾌히 동의해 줬어요. 3개월 동안 행복했죠. 연습과 연주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으니 훨훨 나는 기분이었죠. 법학을 전공하기 위한 예비공부에 몰두했어요. 그런데 자려고 누우면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음악~ 음악~ 음악~’이라는 노크 소리가 들렸어요. 희한한 일이죠. 그래 ‘가난하게 살아도 좋다. 좋아서 하는 것 끝까지 하다가 죽자’라며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박사 과정을 밟으며 ‘아이 러브 피아노’로 컴백했다.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 두둑한 배짱이 생긴 것은 가장 큰 수확이다.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내거가 칭찬받기 위해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정립해가는 연주의 참맛을 알게 됐다. 진정한 콘서트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것. 제2의 정신적 사춘기는 그를 훌쩍 성장시키는 산삼이 됐다.
조재혁은 익사이팅한 피아니스트다. 본업인 피아노는 물론이고 파이프 오르간과 하프시코드까지 못 다루는 건반 악기가 없을 정도도 ‘멀티 플레이어’다. 또한 ‘장르 파괴자’이기도 하다. 다른 영역과의 협업에 적극적이다.
지난 3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용가 김주원 등과 함께 한 발레 퍼포먼스 ‘메시앙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을 그가 라이브 전곡 연주하고, 여기에 맞춰 무용수들이 발레를 선보인 공연이었다.
“육제적으로 힘든 무대였지만 다행히 몸살은 안났습니다. 금, 토, 일 사흘 동안 공연했는데 토요일은 오후 2시와 7시 더블헤더로 치렀죠. 이번 모차르트 소나타 하루 두번 공연에 앞서 미리 경험을 해본 셈이 됐습니다.”
조재혁은 하반기 계획을 밝혔다. 이번 사이클을 마친 뒤 11월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 전곡을 녹음한다. 열흘 동안 통째로 장소를 대관했다. 모차르트의 시대에는 없었던 현대 피아노를 통해 완벽하게 재해석된 곡을 앨범에 담아낸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23번 음반이 나올 예정입니다. 거기에 더해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와 음반도 준비하고 있으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모차르트의 해’가 되었습니다. 연주 생활을 하다 보니 두둑한 배짱이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때로는 ‘배째라 하는 식’이 통할 때도 있습니다. 무모한 도전일지 뜻있는 도전일지는 오로지 제 손에 달려있네요.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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