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화백과의 인연 깃든 ‘한여인의 전설’...뭉클 노래 탄생 과정 밝힌 김생기 대표

뱀·미인도의 독특한 컬러감에 마음 빼앗겨
​​​​​​​작품 있다 소식 들으면 어디든 달려가 감상

9월27일 전주서 음악·전시회 동시 진행
​​​​​​​진품·직접 쓴 엽서 등 소장 자료도 공개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9.19 15:49 | 최종 수정 2024.09.19 16:18 의견 0
미술작품 컬렉터 겸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나래코리아의 김생기 대표는 천경자 화백과의 인연이 깃든 ‘한여인의 전설’을 작사했다. ⓒ김생기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수출업체인 나래코리아를 운영하는 김생기 대표는 미술작품 컬렉터 겸 클래식 음악 애호가다. 지난 20년간 서울, 전주, 장수를 비롯해 일본 등에서도 국내 정상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많은 음악회를 열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못 말리는 음악사랑은 유명하다. 큰 무대 공연도 하지만 사무실에서 스무 명 안팎이 모이는 작은 음악회도 자주 연다. 이런 미니 콘서트를 마치면 연주자와 관객 모두가 회식을 하는 것도 음악 감상만큼 큰 즐거움이다.

어느 날 음악회 뒤풀이 자리였다. ‘진달래’ ‘별을 캐는 밤’ ‘춘심아’ ‘그믐이라서’ 등의 히트곡을 만든 정애련 작곡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삶을 시로 지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 작곡가는 시를 살펴본 뒤 “김 대표님, 좋네요. 운율감만 살리면 좋은 노래가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한번 마음먹으면 바로 추진하는 스타일이어서 곧바로 약속을 잡아 정 작곡가를 따로 만났다. 천경자 화백의 일생을 여러 자료를 섞어가며 이야기해 줬다. 마치 브리핑 현장 같았다.

“그의 그림은 석양이 뉘엿뉘엿 질 무렵에 보는 것이 더욱 운치 있고 컬러감을 느낄 수 있어요. 화폭에서는 옅게 핑크빛을 발하는 갈색의 머릿결이 금색을 입어 비로소 전생에 황후였다던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죠. 황혼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서 어둠의 시간으로 이끄는 아름다운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어요. 광주역 근처 뱀탕집에서 꿈틀거리는 뱀들을 20대 초반의 여성이 앉아서 몇 시간 동안이나 스케치를 하고, 꽃뱀에 물려죽은 그의 고향이기도 한 고흥의 소녀를 생각하면서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의 나이만큼 35마리의 뱀을 그려냈어요. 1952년 전쟁 중에 부산에서 열린 다방 전시회에 뱀 작품이 걸렸을 때, 사람들은 젊은 처자가 뱀을 그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죠.”

김 대표는 천경자의 작품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전설을 하나둘 들었다. 그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보다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새벽까지 정신없이 읽었다. 수려한 문체와 극적인 상황, 그리고 솔직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 솜씨에 반해버렸다.

미술작품 컬렉터 겸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나래코리아의 김생기 대표가 소장하고 있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김생기 제공


천 화백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에 A급 180여점이 기증돼 화랑이나 개인 컬렉터들이 가지고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간혹 인사동에서 연락이 오면 그날은 만사 제쳐 놓고 그림을 보러갔다. “주로 B급이나 C급이 많았고 A급은 그다지 볼 기회가 없었지만, 그림을 보고는 석양이 넘어가는 시간에 인사동 근처 술집에서 막걸리나 레드와인을 마시면서 그의 작품을 다시 음미해 보기도 했죠.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필집에서 자주 언급됐던 막내 아드님인 ‘쫑쫑이’ 김종우 님이 분당 세종문고 대표로 계시다는 것을 알고 전화를 걸어 만나게 됐다. 김 선생님으로서는 어머님의 그림을 좋아하는 젊은 사람이 온다고 즐겁게 약속을 잡아주었다. 날짜도 또렷이 기억한다. 2004년 9월 13일 월요일이었다. 당시 김 대표는 39세였고 김 선생님은 48세였다.

천 화백의 아드님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개구리를 잡아오라고 해서 친구들과 같이 잡아다 줬는데, 어머니께서는 개구리의 뒷다리를 묶거나 풀어놓고는 스케치를 했어요.” “일본에 갈 때면 어머니가 쓰시던 석채(石彩)를 사다 드렸는데 그램 단위로 파는 석채가 상당히 가격이 비쌌어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세종문고에서 펴낸 수필집 ‘탱고가 흐르는 황혼’까지 선물로 줘 그날 밤을 꼬박 새워 단숨에 읽었다. 김 대표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아드님 김종우 님은 아버지인 남봉 김남중 선생같이 미남이었고 부모님을 닮아 키가 크고 멋졌어요. 그런 그가 그로부터 4년 후에 어머니를 남겨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났죠.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천경자 화백은 편안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오직 그림 하나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살았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미인도’ 위작사건으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어 절필을 선언하고 큰딸인 이혜선 님이 살고 있는 뉴욕으로 가서 그의 수필집 제목처럼 ‘한’ 많은 인생을 살다가 2015년에 세상을 떠났다.

미술작품 컬렉터 겸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나래코리아의 김생기 대표가 소장하고 있는 천경자 화백의 인도 올드델리의 풍경. ⓒ김생기 제공


<한여인의 전설>
-작곡 정애련·작시 김생기

고흥 앞바다에 황혼이 내리면 노래하는 한소녀의 전설
예쁜 동네 소녀와 멋진 모자 길례언니
고흥반도에 밤이 깊어가면 아낙네들 속삭임 속삭임
빨강 노랑 주황 풍경속 아름다운 여인들
한으로 채색되어 화려한 색채로 태어나는 그림들
아 - 그대는 한 마리 학이 되어 날아가셨나요 그대는
아 - 아 - 아 - 그대여
고흥 앞바다에 황혼이 내리면 빛깔 고운 아름다운 전설
화폭에 녹여낸 낭만과 열정은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네

정애련 작곡가는 그의 스타일이나 성격답게 천 화백이 되어 몇 주간 정성을 들여 곡을 완성했다. “처음 부분은 화려하면서 달달하게 했어요. 천 화백님의 작품에 대한 사랑과 그녀의 정열을 생각해서요.” 수많은 아름다운 곡을 작곡한 정 작곡가의 곡이라 너무 즐거웠다. 마침 피아니스트 신정혜 선생님이 오셔서 사무실에서 연주를 부탁해 들었는데 “대표님, 이곡 정말 화려해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 기뻤다.

초연은 김 대표의 모교인 전주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후배들과 같이 감상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연주를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바로 전주로 달려온 소프라노 김민지가 멋지게 불러 이 세상에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그 후 서울예가 이경숙 회장의 주선으로 소프라노 박연선이 불렀고, 2020년 1월 ‘아리수 가곡제’에서 김정주 선생님 주선으로 소프라노 신승아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많은 분들 앞에서 이 곡을 마치 천경자 선생이 나와서 이야기 해주듯이 아름답게 불렀다.

“황혼이 흐르는 저녁에는 항상 천 화백을 생각합니다. 그의 그림은 밋밋하지가 않아요. 작품을 찬찬히 음미하다보면 탱고를 들으며 레드와인이 마시고 싶어지죠. 상처를 입은 채 떠난 천 화백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아도 그를 위로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있는 한 저 세상에서는 편안하실 겁니다. 그의 고향인 고흥반도에 황혼이 내리면 혁띠인 줄 알고 꽃뱀을 잡다가 물려죽은 어린 소녀와 소록도에서 찾아온 예쁜 길례언니,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동생 옥이, 그리고 사랑했던 연인의 이야기가 ‘한여인의 전설’로 태어납니다.”

천경자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9월 27일 전주 문화공간 이룸에서 전시회와 음악회를 연다. ⓒ김생기 제공


천경자 화백은 1924년 출생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전주에 있는 문화공간 이룸에서 전북문화관광재단과 나래코리아 후원으로 9월 27일(금) 오후 7시 30분 전시회와 음악회를 연다. ‘명화따라 클래식 산책 시즌2’로 열리는 공연이다.

이번 행사는 천 화백의 미인도와 인도 올드델리의 풍경 등 원화 2점과 천 화백이 도쿄 시바파크 호텔에서 당시 중앙일보 문화부 이종석 기자에게 쓴 친필 엽서 1점, 인쇄본 12점, 그리고 50점의 자료를 전시해 그의 미술세계를 살펴본다.

메조소프라노 신진희는 ‘한 여인의 전설’(김생기 시·정애련 곡)을 연주한다. 이어 베이스 이대혁이 ‘별을 캐는 밤’(심응문 시·정애련 곡) 등을 연주해 분위기를 이끈다. 이윤정(피아노)과 이영신(피아노)도 출연한다.

연주회 가이드로 미술 평론으로 주목 받는 최지영 작가가 선정돼 관객들에게 미술과 음악의 세계를 소개할 예정이다. 정애련 작곡가와 김생기 대표도 특별출연한다.

● ‘도꾜 시바파크 호텔에서 온 엽서’ 구입 과정

미술작품 컬렉터 겸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나래코리아의 김생기 대표가 소장하고 있는 천경자 화백이 쓴 엽서. ⓒ김생기 제공


나래코리아 김생기 대표가 처음 천경자 화백을 알게 된 것은 수필집을 통해서였다. 남도의 맛깔스러운 사투리와 언어가 마치 색깔을 가진 것처럼 다양한 아름다움이 있었고, 강물의 흐름처럼 유려하고 자연스러웠다. 자녀들과 사랑하는 김남중 선생과의 이야기들을 꾸며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으로 풀어내 쓴 글들을 밤새 읽으면서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사업을 시작하고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서 부터는 인사동 헌책방에서 도록과 책들을 구입해 읽고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 있다고 하면 연락해서 진품 여부를 확인 한 후 구매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됐다.

“어느 날 인사동 화랑에서 연락이 왔다.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분이 있는데 구매 의사가 있는가를 물어왔다. 일단 오케이 사인을 보냈더니 저녁에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서초구에 있는 어느 아파트 앞까지 갔는데 나는 밖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화랑 실장님 혼자 들어가서는 몇 개 작품들의 사진과 엽서 및 자료 등을 가지고 나왔다. 그 날 저녁에 천 화백의 엽서와 몇몇 소장품을 즉석에서 구입했다.”

‘도꾜 시바파크 호텔에서 온 엽서’는 그렇게 김 대표에게 왔다. 1965년 12월 22일의 엽서는 당시 중앙일보 문화부 이종석 기자에게 천 화백이 보낸 것이다. 이종석 선생은 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호암미술관 관장을 역임하고 짚풀생활사 박물관에 457점의 유물을 기증한 언론인이다. 1965년 당시 천경자 선생은 42세였고, 이종석 선생은 7살 연하인 35세의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였다.

이종석 선생
오랫동안 소식 드리지 못했습니다. 안녕하신지요.

덕분에 개전 마치고 지금이 그림엽서에 있는 동경 타워 바로 옆의 시바타워호텔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제가 늦게 와서 신문사 인사가 늦어 지상으로는 산케이 외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미즈에’(일본의 유명한 미술잡지사)에서 원색만을 촬영해갔고 ‘산사이’에서 크게 평이 나옵니다. 그리고 1967년 5월 자생당 갤러리(시세이도 갤러리 - 화장품 회사)에서 삼국사전을 하기로 예약이 되었습니다. 세기신이찌, 오오까신, 가호꾸린 메이 여러 사람이 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내년에 귀국한 즉시 뵐께요.

호텔 보케(호텔 생활에 젖어서 편한 상태)가 되어 편지쓰기가 힘드네요. 예부장님, 손여사, 손기상님에게 암부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도꾜 시바파크 호텔 천경자 -

이 엽서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60·70년대야말로 낭만의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경제적으로는 힘든 시기였지만, 예쁜 한자와 한글을 자유자재로 써가면서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천경자 선생의 모습에서 애틋한 그리움과 함께 낭만을 느끼게 된다. 수필집에서는 그 당시 천경자 화백이 일본 전시회 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러한 과정에서도 당신이 공부하고 졸업한 도쿄에서 전시회를 연다는 뿌듯함은 있었던 것 같다.

“미술 작품과의 만남은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내가 미술에 흥미를 느낀 것이 미술평론가 이규일 선생을 인사동 화랑에서 만나 뵙고 그가 쓴 ‘뒤집어본 한국 미술’ ‘한국 미술의 명암’, ‘한국 미술 졸보기’ 등의 책을 읽고서 미술세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안에 숨겨진 재미있는 이야기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앞으로도 컬렉터로서의 나의 경험이 또 다른 젊고 팔팔한 젊은이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천경자 선생께서 1965년에 보내온 이 엽서는 이종석 기자님의 부인인 인태숙 여사에게로 전해져서 나에게 왔으며 언제가는 또 다른 누구에게로 갈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천경자 화백의 연구에 다소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미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저 반갑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unki@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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