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홍혜란 ‘위로·위안의 힐링송’ 선사

“역시 최고 디바” 4년만의 리사이틀 성황
‘마중’ ‘희망가’ 등 뭉클 한국가곡 연주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1.25 14:34 | 최종 수정 2023.03.20 10:36 의견 0

소프라노 홍혜란이 2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한국가곡을 노래하고 있다. Ⓒ스톰프뮤직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사랑이 너무 멀어 /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 얼굴 마주하고 앉아” 소프라노 홍혜란이 요즘 2030의 최애 한국가곡으로 유명한 ‘마중’(허림 시·윤학준 곡)을 부르자 관객 모두는 깊은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

그는 노래를 부르기 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 노랫말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막상 이 부분이 귓전으로 들어오자 그 이유를 알겠다. 누군가에게 힐링을 주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냥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을 건네는 일이리라.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치유제가 돼 가슴으로 들어왔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 아시아계 첫 우승자인 홍례란이 새해를 맞아 희망을 노래했다. 2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은 공연 제목 그대로 ‘호프(Hope)’를 선물했다.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찾기 어려운 때 노래로 팬데믹을 극복하는 솔루션을 펼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꾸밈없는 진솔한 보이스로 감동의 울림을 이끌어 냈다.

홍혜란은 솜씨를 뽐내는 선곡이 아니라 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캐주얼한 곡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자연히 귀에 익은 곡들이 많았다. 1부에서는 피아니스트 김은찬과 호흡을 맞춰 ‘가곡의 왕’ 슈베르트가 남긴 대표곡 5곡을 잇따라 들려줬다. 들으면 들을수록 먹먹한 ‘아베마리아’, 연가곡집 ‘백조의 노래’에 들어있는 사랑의 고백송 ‘세레나데’, 학창시절 음악시절에 자주 불렀던 ‘들장미’, 회전하는 물레를 리드미컬하게 표현한 ‘물레 잣는 그레첸’, 금방이라도 펄떡펄떡 물을 솟구쳐 뛰어 오를 것 같은 ‘송어’는 독일 예술가곡 리트의 매력 속으로 안내했다.

이어 오브라도스의 ‘스페인 고전가곡’에 들어있는 ‘오직 나만의 라우레올라’ ‘사랑으로’ ‘내 마음은 어찌하여’ ‘질투에 찬 젊은이’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부드러운 머릿결’ ‘작은 신부’ 7곡을 연주했다. 제2곡 ‘사랑으로’에서는 ‘천과 백만큼 사랑하고, 또 천과 백만큼 사랑하고, 거기에 다시 셋만큼 더 사랑’하는 애절한 마음을 잘 표현했다. 제6곡 ‘부드러운 머릿결’에서는 ‘머리카락으로 쇠사슬을 엮어 그대를 끌어당기고, 또 그대의 작은 술잔이 되어 매일 입맞춤하고 싶은’ 간절함을 아름답게 엮어냈다.

소프라노 홍혜란이 2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괸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스톰프뮤직


2부에서는 2020년 발매한 ‘희망가’ 앨범에 실린 가곡 중 ‘산촌’ ‘진달래꽃’ ‘가을밤’ ‘그리워’ ‘희망가’에 더해 새로 ‘마중’을 섞어 모두 6곡을 노래했다. 김은찬(피아노), 태선이(바이올린), 박하문(비올라), 박건우(첼로)로 구성된 퍼스트앙상블과 찰떡케미를 맞춰 풍성한 선율을 선물했다.

‘산촌’(이광석 시·조두남 곡)과 ‘진달래꽃’(김소월 시·김동진 곡)은 편곡한 버전으로 연주해 새로운 느낌을 잘 전달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 같도다” 홍혜란은 마지막 곡으로 앨범의 타이틀 곡인 ‘희망가’를 선택했다.

‘희망가’의 원곡은 미국 흑인들이 예배 때 부르던 노래다. 19세기에 미국에서 불리던 영가(靈歌)를 모아 소개하던 제레미아 인갈스가 1830년대 중반 남부 흑인들이 부르던 찬송가를 수집해 출간한 악보집에서 ‘희망가’가 나왔다. 원곡은 거기에 수록된 ‘The Lord into His Garden Comes’라는 찬송가다.

1890년대에 일본에서 먼저 번안곡이 나왔다. 우리나라에는 1910년대에 흘러들어와 기독교 신자 임학천이 ‘이 풍진 세월’이라는 제목으로 1·2절 노랫말을 붙였고, 민요가수인 박채선·이류색이 1920년대에 발표했다. 1930년 당시 최고 인기 가수이던 채규엽이 리메이크해 크게 유행했다. 홍혜란에게 이 곡은 특히 큰 의미가 있다.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가 평소 자주 애창하던 노래입니다. 항상 흥얼거리면서 불러주던 그 음색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저도 이 노래로 위로받으며 희망을 찾았습니다. 힘든 세상 속에서도 결국 주변을 둘러보면 힘이 되고 용기가 되는 건 사람들입니다. 이번 콘서트에서도 관객들과 그 감정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홍혜란은 앙코르 곡으로 그라나도스의 ‘엘 비토(El Vito)’와 ‘연(김동현 시·이원주 곡)’을 연주하며 2018년 이후 4년 만의 독창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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